‘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빠지고 남북간 다양한 ‘작은통로’ 제안軍위안부 문제해결 직접언급…北·日 태도보며 경축사 수위조절
박근혜 대통령의 올해 광복절 경축사는 지난해와 비교해 여러모로 달라진 내용을 선보였다.박 대통령은 취임후 처음으로 맞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남북관계와 한일관계, 국내 현안 등에 대해 큰틀에서 접근했다면 집권 2년차인 올해는 변화한 안팎의 환경 등을 고려한 각론을 제시하며 다양한 제안을 쏟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올해 경축사에서는 통일을 준비하는 일이 시대적 소명이라고 강조하면서 북한에 환경·민생·문화의 통로를 열자고 촉구하는가 하면 일본에는 한중일 중심의 ‘원자력 안전협의체’ 구성을 전격 제안했다.
또 국가혁신과 경기활성화가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치권에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동참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 신뢰프로세스 언급없이 남북 실천가능 사업부터 제안 = 올해 경축사에는 대북정책의 근간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올해 초 통일대박론, 지난 3월 독일 방문길에 내놓았던 드레스덴 구상 등에 대해 북한이 흡수통일론이라고 반박하며 대화 자체를 거부한 점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신 박 대통령은 북한의 의지가 있다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남북협력 사업을 패키지 형태로 제시했다.
하천·산림 공동관리, 생물다양성 협약 당사국 총회의 북한 참여, 광복 70주년 맞이 남북한 공동기념 문화사업 등이 그것이다. 이는 북한 민생 인프라 구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드레스덴 구상과 관련해 북한의 오해를 해소하고, 작은 사업부터 시작해 교류를 점차 확대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남북한이 지금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사업부터 하나하나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올해 경축사의 남북관계 부분에선 소통, 통로, 교류, 협력, 대화와 관련한 단어가 15차례 언급됐다. 반면, 지난해 남북관계 문제에선 협력이라는 단어만 한 차례 언급됐다는 점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 日에 경고 대신 정치지도자 결단촉구, 軍위안부 언급 = 지난해 경축사에선 박 대통령이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과거사 직시”와 “용기있는 리더십 실천”, “책임있고 성의있는 조치”를 촉구하며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정계에 우회적인 경고장을 보냈다.
하지만, 올해에는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지혜와 결단”이라는 표현을 쓰며 과거사 문제로 발목 잡힌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선 일본이 먼저 돌파구를 제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여기에다 박 대통령은 내년이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라는 시대적 의미를 부여했고, 한중일 중심의 동북아 원자력 안전협의체 구성이라는 대안을 제시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한일간 최대 현안인 군위안부 문제와 관련, 지난해는 “과거 역사에서 비롯된 고통과 상처를 지금도 안고 살아가고 계신 분”이라고 에둘러 표현하며 위안부를 적시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군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살아계시는 동안 그분들이 납득할 수 있는 전향적 조치를 요구해왔다. 이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할 때 한일관계가 건실하게 발전할 것”이라며 정면으로 다뤘다.
◇’핵심키워드는 경제활성화…경제·혁신’ 단어 34차례 사용 = 올해의 핵심 키워드는 ‘국가혁신’과 ‘경제활성화’였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 국내현안 분야에서 ‘경제’와 ‘혁신’이라는 단어를 모두 34차례 사용했다.
이는 7·30 재보선 민심을 경제살리기로 규정한 박근혜 정부가 최근 정치권의 법안 처리를 촉구하며 경제활성화 및 국가혁신 드라이브를 거는 현상이 경축사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난해 경축사 국내 현안 분야에선 경제란 단어는 5차례 언급됐다. 대신 박 대통령은 헌법적 가치와 법질서 확립, 잘못된 관행과 부정부패 해소 등을 언급하며 4대 국정기조와 국정과제의 큰 틀을 제시하는데 주력했다.
◇”北·日 태도 주시하며, 경축사 내용 및 수위 조정” = 박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와 관련, 막판까지 북한과 일본의 태도변화를 주시하며 경축사를 다듬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닷새간의 여름 휴가를 경내에서 보내며 광복절 메시지 구상에 들어갔고, 휴가 복귀 후 비서실과 안보실의 보고를 토대로 큰 틀의 초안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달 들어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의 진전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일정이 이어지면서 박 대통령과 참모진은 북한과 일본의 입장을 주시하며 경축사의 내용과 수위를 가다듬었다고 한다.
지난 5일 일본의 2014년판 방위백서 발간을 시작으로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7일), 6자 회담 당사국 모두가 참여한 아세안지역 안보포럼 개최(10일), 남북 고위급 접촉 제안(11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북한의 인천아시안게임 선수단 파견 확정 및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14일),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 각료들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15일) 등 크고 작은 남북, 한일 관계 현안이 계속해서 이어졌던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달 들어 남북, 한일 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시험할 수 있는 일정이 계속됐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북한과 일본의 태도와 반응을 지켜봤고, 이런 부분을 두루 반영해 경축사를 완성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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