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 염두에 둔 ‘숨고르기’ 전략 풀이
중국이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고서 사흘만에 미국 B-52기가 사전 통보 없이 중국 방공식별구역을 비행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비교적 저자세 대응을 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미국은 B-52기 운항을 통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냈지만 중국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전투기를 긴급발진시켜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한 항공기를 견제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경고도 보내지 않았다. B-52의 운항 전과정을 추적, 감시한 것이 전부였다.
중국 국방부는 B-52기의 모든 운항 과정을 감시했다고 밝혔으나 레이더를 이용해 추적, 감시한 것인지 아니면 정보기를 띄워 감시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본 매체들은 중국이 당시 정보기를 보냈으나 B-52기에 접근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B-52기 운항에 대한 중국 당국의 반응이 늦게 나왔다는 점도 중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B-52기가 동중국해 방공구역을 침범한 지 10시간 이상이 지난 27일 정오(중국시각)께 B-52기 운항사실을 밝히고 “통제능력이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중국의 이런 대응은 27일 열린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종이호랑이’라는 지적을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의 이런 대응은 장기전을 염두에 둔 ‘숨고르기’ 차원의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고 베이징 외교가는 분석했다.
중국으로서는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을 기정사실화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이번 방공구역 선포로 동북아의 긴장이 과도하게 고조되는 것을 피하는 게 이득이라는 풀이다.
미국 등과 정면 대치하게 되면 중국이 추구하는 신형대국 관계 구축은 물론 동북아의 안정도 안갯속으로 빠져들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 수위를 적절히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 선포후 항공모함 랴오닝호가 남중국해로 선단 훈련을 떠나면서 센카쿠(댜오위다오) 부근 해역을 지나지 않고 대만해협을 통과한 것이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지방을 순시하면서 방공식별구역과 관련한 언급을 피하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전략으로 해석된다.
미국도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따른 군사적 긴장이 과도하게 고조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다고 중국 매체들은 분석했다.
중국 환구시보는 28일 군사전문가의 말을 인용, “미국 군용기가 방공식별구역 선포후 즉시 진입했다는 점은 (중국의 행동에) 도전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면서도 “미국이 훈련비행이라고 강조하고 B-52기가 비무장 상태였다는 점은 이번 일이 과도하게 해석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신호를 전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