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었던 ‘오륙남’은 왜 홀로 죽음을 맞았나

가장이었던 ‘오륙남’은 왜 홀로 죽음을 맞았나

이현정 기자
이현정 기자
입력 2024-10-17 18:07
수정 2024-10-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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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고독사 절반은 5060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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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서울의 한 영구임대 아파트에서 63세 김모씨가 숨졌다. 시신은 푹푹 찌는 방에 수주간 방치됐고, 냄새가 난다는 이웃의 신고로 한 달 뒤에야 발견됐다. 그는 병원 청소 용역 노무직으로 13년 이상 일한 건실한 노동자였으나 건강 악화로 일자리를 잃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됐고, 2018년 여름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뒤늦게 연락이 닿은 전 부인이 재혼했다며 시신 인수를 거부해 김씨는 무연고 사망자로 ‘장례 처리’됐다. 지독히도 쓸쓸한 죽음이었다.

1인가구가 783만 가구(지난해 기준 전체의 35.5%)에 육박하면서 고독사의 그늘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17일 발표한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2021년 3378명, 2022년 3559명, 지난해 3661명이 사회와 단절된 채 살다가 쓸쓸히 숨졌다. 절반 이상(53.9%)이 50·60대 남성이었다. 여성을 포함하면 전체 고독사 중 50·6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61.8%다.

20~30대(5.8%)도 적지 않은 수가 고독사했지만 형태가 달랐다. 20대 고독사의 59.5%, 30대는 43.4%가 자살이었다. 반면 50대(14.1%), 60대(8.3%)는 고독사 중 자살 사망자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보다 지병 등으로 홀로 죽음을 맞은 이들이 더 많았다는 의미다.

노정훈 복지부 지역복지과장은 “50~60대 고독사는 사별이나 이혼, 알코올 관련 질환 등 고질적인 만성질환, 주거 취약 등과 관련 있고, 20∼30대 고독사는 취업 실패나 실직 등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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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층 고독사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문제로 추정된다. 아파트(21.8%)보다는 연립 주택 등에서 발생한 고독사가 절반가량(48.1%)을 차지했고, 전체 고독사 중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비중이 41.4%였다. 다만 약 60%가 비수급자란 점에서 노 과장은 “고독사가 경제적 취약 가구에 한정해 발생하는 건 아니다. 경제적 요인만 바라봐선 안 된다는 걸 보여 주는 통계”라고 설명했다.

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2년 고독사 예방실태조사’에 따르면 1인가구 9471명을 상대로 고독사 위험 정도를 평가한 결과 78.8%가 고독사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최빈곤층이 아닌 평범한 가구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죽음이란 의미다. 보사연은 ‘1인가구의 사회서비스 수요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장년 1인가구는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있으면서 가족·사회적 관계가 안정되지 않은 편”이라고 밝혔다.

대체로 중년층 남성 고독사는 퇴직·실직 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가족과 갈등을 겪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동안 만성질환이나 알코올의존증이 더 악화해 죽음에 이르는 패턴을 보인다. 반면 중년 여성은 건강관리·가사노동에 익숙해 혼자 살더라도 고독사까지 가는 사례가 적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고립·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장년들에게 만성질환 관리와 생활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이유다. 청년층을 대상으론 일자리 지원, 고립·은둔 청년 건강지원과 함께 자살 예방정책도 연계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1인가구, 경제·건강 상태, 실직 여부 등의 정보를 연계한 고독사 위기대응 시스템을 구축해 사각지대 발굴에 나선다.

고독사 전담 부서나 기관을 신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은 2018년 외로움 담당 부처를 지정했고, 일본은 2021년 우리의 국무조정실에 해당하는 내각관방에 담당 부서를 만들었다. 반면 한국은 2022년 첫 실태조사를 했고 복지부 담당 직원도 4명뿐이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독사는 줄지 않고 계속 심해질 것”이라며 “총괄 팀을 둬 고위험 1인가구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24-10-1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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