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자 도피처’ 과거 명동성당서 2000년대엔 조계사

‘수배자 도피처’ 과거 명동성당서 2000년대엔 조계사

입력 2015-11-17 16:21
수정 2015-11-1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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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 투입된 적 없어…명동성당선 퇴거요청 사례도

경찰의 수배를 받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경내로 피신하면서 조계사가 ‘수배자의 도피처’로 주목받고 있다.

조계종은 17일 한 위원장 문제에 대해 실무회의를 열었지만 총무원장이 해외 출타 중이라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는 못했다. 따라서 조계종은 한 위원장에 대해 당분간 별다른 조처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은 한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외곽을 경찰력으로 둘러싸고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조계사에는 한 위원장과 같은 시국사범이 은신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촉구 촛불집회와 관련해 집시법 위반 혐의로 수배됐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간부와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 6명은 2008년 여름 조계사에 몸을 의탁했다.

이 전 위원장 등 6명은 그해 10월 29일 낮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조계사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간부 5명은 그해 11월 초 강원도의 한 호텔에서 검거됐으며, 이 전 위원장도 그로부터 한 달 뒤 경기 고양시에서 붙잡혔다.

2013년 12월에는 철도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됐던 박태만 당시 철도노조 수석 부위원장이 조계사에 은신했다.

박 부위원장은 철도파업이 중단되고서 이듬해 1월 14일 스스로 조계사를 빠져나와 경찰에 자진 출석해 구속됐다.

경찰은 이따금 수배자를 검거하려고 조계사 경내 안으로 진입했지만, 그때마다 승려와 신도의 강한 반발을 샀다.

이에 따라 2002년 발전노조 조합원 150여명을 쫓아 조계사 경내로 들어간 이후에는 진입을 시도한 적이 없다.

이렇게 2000년대 후반부터는 조계사가 시국사범의 ‘현대판 소도’(蘇塗·죄인이 도망치더라도 잡아가지 못했던 삼한시대의 성지) 역할을 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표적인 소도는 명동성당이었다.

명동성당은 1970∼1980년대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이들이 농성장이나 도피처로 이용해 ‘민주화의 성지’라는 별칭을 받았다.

1987년 6월에는 민주화를 열망하며 거리로 나선 학생과 시민을 공권력의 강경 진압 앞에서 끝까지 보호하며 6·29 선언으로 향하는 나름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명동성당이 이렇게 현대판 소도의 대명사가 됐던 이유는 천주교가 시국사범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려 했기 때문이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되는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가 민주화운동 전면에 나서게 됐고, 명동성당은 자연스레 시국사범을 보듬는 ‘사회적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여기에 종교시설이라는 특수성으로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하기를 주저해 시국사범이 검거 위험에서 벗어나 민주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기에도 알맞은 공간이었다.

이후 1990∼2000년대부터는 주로 노동 인사들이 명동성당에 몸을 의탁했다.

‘천막농성’ 하면 명동성당을 떠올릴 정도로 크고 작은 노조가 이곳에 천막을 치고 장기간 노숙하며 요구 사항을 들어 달라고 농성했다.

그러나 명동성당은 잦은 노조의 장기 농성으로 신도들의 불편이 늘면서 이들의 퇴거를 요청하는 등 강경한 자세를 보이며 도피처라는 위상이 퇴색되기 시작했다.

1999년 지하철노조원 농성과 관련해 성당 측은 “최근 성당이 일부 집단의 이익을 강변하는 자리로 전락해 안타깝다”는 입장을 밝히며 노조의 퇴거를 요구했다.

2001년에도 20여일 동안 천막농성을 벌이던 민주노총 단병호 전 위원장에게 퇴거요청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성당 측은 “명동성당은 일시적인 수배자 피신처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뿐 민주노총 지도부의 투쟁본부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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