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 ‘식물인간’ 된 딸…엄마는 “딸 죽고 범인은 출소해 사람처럼 살 거 생각하니”[전국부 사건창고]

여행 가 ‘식물인간’ 된 딸…엄마는 “딸 죽고 범인은 출소해 사람처럼 살 거 생각하니”[전국부 사건창고]

설정욱 기자
설정욱, 이천열 기자
입력 2024-07-13 13:30
업데이트 2024-07-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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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건강했던 딸이 동창의 폭행에 식물인간이 됐다며 엄마는 엄벌을 호소하고 있다.
젊고 건강했던 딸이 동창의 폭행에 식물인간이 됐다며 엄마는 엄벌을 호소하고 있다. 보배드림
비극이 된 중학교 동창 ‘우정 여행’
남자 동창의 폭행으로 사지마비
1년 넘게 불구속, 1심서 ‘법정구속’

“절친들과 행복한 마음으로 떠난 제 딸의 여행이 죽음의 여행길이 돼 돌아왔습니다. 딸이 식물인간이 된 지옥 같은 고통 속에 2년을 버텨온 저희는 오늘 (가해자) ‘5년 구형’을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지고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중학교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가 남자 동창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해 식물인간 상태가 된 A(20)씨의 어머니는 지난 4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제 딸 목숨은 길어야 2, 3년이라는데…꽃도 피워보지 못한 소중한 딸을 이렇게 만든 대가가 고작 5년”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검찰은 논란과 함께 거센 비난이 일자 구체적인 양형 조사를 거쳐 중상해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중학교 동창 B(20)씨에 대한 구형을 징역 8년으로 높였고, 1심 재판부는 지난 5월 2일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제1형사부(부장 정성민)는 “당시 19세에 불과했던 A씨는 B씨의 범행으로 식물인간이 돼 인공호흡기와 타인의 보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며 “B씨가 A씨와 그 부모에게 진정한 사죄의 마음이 있었다면 매달 노동해 치료비를 지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건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그런 노력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질타한 뒤 이같이 실형을 선고하고 B씨를 법정 구속했다.

B씨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1년이 넘도록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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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남자 동창이 부산 숙소에서 여자 동창을 폭행하는 모습. 같이 있던 또 다른 동창이 촬영했다.
중학교 남자 동창이 부산 숙소에서 여자 동창을 폭행하는 모습. 같이 있던 또 다른 동창이 촬영했다. 보배드림
엄마 “딸아이 억울함 풀어달라”

사건은 지난해 2월 6일 군산에 사는 A씨가 중학교 동창들과 함께 부산으로 여행을 갔을 때 발생했다. 중학생 때부터 우정을 쌓아온 여자 2명, 남자 2명 등 모두 4명이 2박3일 일정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이들은 도착 첫 날 부산 숙소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이튿날 오전 3시쯤 B씨와 여자 동창생이 잠을 자던 A씨에 대해 험담했고, 이 소리에 A씨가 잠에서 깨 여자 동창에게 이를 따졌다. 이때 B씨가 끼어들어 욕설과 함께 A씨의 머리를 밀쳤다. 그녀가 “왜 욕을 하느냐”며 저항하자 무자비한 폭행이 이어졌다.

옆에 있던 여자 동창생이 말리자 B씨는 “너도 죽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라고 협박한 뒤 A씨를 무차별 폭행했다. A씨는 뒤로 넘어지면서 뒷목이 테이블에 부딪힌 채 바닥에 떨어졌다. 머리와 목 등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엄습했다.

A씨는 오전 4시쯤 군산에 있는 친구에게 기차표 예매를 부탁한 뒤 도망치듯 혼자 KTX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는 열차 안에서 내내 속이 울렁거렸고, 구토에 시달렸다. 머리도 빙빙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군산에 도착한 A씨는 친구 집에 머물다가 오후에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뇌출혈이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말했고, 인근 익산의 원광대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입원한 뒤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깜짝 놀란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때만 해도 의식이 있던 딸은 “술을 마시고 혼자 넘어졌다”는 말만 거듭했다. 엄마는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만 해도 멀쩡했던 딸의 말이 석연치 않자 함께 여행 간 동창 2명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았다. “딸 상태가 심각하다. 나중에 딸이 세상에 없을 때 원망 소리 들을래. 상황이 짐작 가니 숨길 생각 하지 말고 연락 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이에 친구들이 연락을 해 왔고, 엄마는 진상을 알고 나서 무너졌다. A씨는 건강이 점점 나빠져 같은달 13일 끝내 의식을 잃고 외상성 경추(목뼈) 두부성 뇌출혈로 식물인간이 됐다. 동창한테 폭행당한 지 엿새 만이다.
흉악 범죄가 급증합니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직시하고 아우성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습니다. 사건이 단순 소비되지 않고 인간성 회복을 위한 노력과 더 안전한 사회 구축에 힘이 되길 희망합니다.
“사과 한마디 없다” “PC방서
게임한다는 소문도 참았는데”


엄마는 ‘저희 딸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온라인 커뮤니티 글에서 “키가 178㎝나 되는 건장한 남자가 44㎏의 연약한 여자아이 머리를 두 번이나 가격했다”면서 “저희 딸이 날아가듯이 탁자에 부딪힌 것을 보면 아주 작정하고 죽이려고 폭행을 가한 것이다. 이건 명백히 살인”이라고 적었다.

B씨는 이 사건 불과 반년 전인 2022년 7월에도 헤어진 여자친구(당시 17세)의 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엄마는 “딸은 식물인간이 되고 병원비로 매달 460만원이 들어가는데 가해자(B씨)는 연락은커녕 사과 한마디 없이 불구속 상태로 1년 넘게 편히 일상생활을 하면서 술 마시고 PC방에서 게임질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참아야 했다. 가해자가 짧은 실형을 살고 나오면 우리 아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데 가해자는 다시 사람같이 살고, 이게 자꾸 현실이 될 거라는 확신이 드니 미치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돈 없고 빽 없는 나약한 사람은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만 사는 세상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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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6년
피해자 사망·살인 고의성 입증돼야
‘죄명’ 변경 가능

B씨는 재판 과정 내내 “폭행한 것은 맞지만 중상해를 입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호텔 방에 침대 2개가 있고, 침대 옆 벽면에 테이블이 있어 몸싸움이 생기면 테이블이나 침대 프레임에 부딪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며 “B씨는 A씨와 우정을 쌓고 같이 여행 가는 가까운 사이인데도 성인 여성 2명이 날아갈 정도로 힘껏 던졌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B씨는 선고 직전 A씨 부모와 3000만원에 합의하려다가 거부당하자 이를 형사 공탁해 감형을 꾀했다.

재판부는 “A씨의 부모는 어린 딸이 식물인간이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고통을 받았는데, 계속해서 지출해야 하는 상당한 의료비·간병비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같은 사정을 고려해 권고 형량이 넘는 형을 선고한다. 권고 형량은 일반적 기준일 뿐 법적 효력이 없다”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문제는 중상해죄의 양형 기준이 징역 1년에서 2년이고, 가중돼도 징역 1년 6개월~4년이라는 점이다.

온라인에 ‘딸 애 아빠는 아이가 잘못되는 순간 바로 품에 안고 하늘나라로 같이 간다고 한다’고 적은 엄마는 1심 선고 직후 한동안 말없이 흐느끼다 딸의 이름을 계속 목 놓아 불렀다. 엄마는 “최고 10년까지 받을 줄 알았다. 판사님께 엄벌 탄원서도 드리면서 마지막 희망을 가졌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사건은 검찰과 가해자 B씨가 모두 항소해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전주지역 모 변호사는 “사실심인 항소심이 끝나기 전에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살인의 고의성이 명확히 입증되면 형이 더 높은 살인미수, 상해치사 등으로 죄명을 변경해 공소장을 다시 쓸 수 있다”고 했다.
이천열·설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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