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이삭 줍는 계절이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시름조차 가라앉으면 누구나 지난 일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해묵은 유행가마저 가슴을 적신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충북 진천을 지날 때면 강물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가 보인다. 가까이 가 보면 듬성듬성한 돌덩이가 크고, 이어진 길이도 제법 길어 웅장하다. 특히 모양새가 마치 용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강을 헤엄치는 듯해서 장관이다. 바로 ‘농다리’다. 고려 초기 임장군이 붉은 돌로 음양을 배치해 28수에 따라 28칸으로 지었다고 한다.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돌을 쌓아 올려 교각을 만든 후 긴 상판석을 얹은 형태로 길이는 95m 정도다. 천년의 풍파와 세찬 물줄기를 견딘 ‘농다리’는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됐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의 배경이기도 하다. 옛날 옛적 지혜로운 사람들이 무심히 흩어져 있던 돌덩이로 인간을 이롭게 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징검다리. 작은 개울이나 물이 괸 곳에 돌이나 흙더미를 드문드문 놓아 만든 다리를 말한다. 나그네는 이걸 밟고 물을 건너 그가 바라는 세상으로 나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징검다리를 밟고 강을 건너는 나그네가 되고, 나그네를 건네주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서녘 강물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지나온 길을 가만히 더듬어 본다. 고향 집 앞 개여울의 작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열두 살 홍안의 소년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며 그 후로 건넜던 수많은 크고 작은 징검다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저 감사한 마음만 있을 뿐 무엇 하나 갚지 못한 기억들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중 누구는 세상과 이별했고, 누구는 소식조차 끊겼으며 누구는 한참 노쇠했고, 누구는 똑같이 나이 들어 가고 있다.
나그네가 징검다리를 잊고 사는 건 자연스럽다. 특별히 징검다리가 너무 고마워 평생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살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에 헤지고 부서지면 차츰차츰 잊게 된다. 시절인연의 뒷모습이다. 징검다리는 그런 나그네의 망각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의 일은 나그네가 강을 넘도록 돕는 것이었고, 그를 밟고 지나간 나그네가 그의 세상에 잘 당도하기를 바랄 뿐이었으니 말이다.
살아오며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된 적은 있었던가. 몇몇 친숙한 얼굴이 떠오르다 금세 사라진다. 그들이나 나나 자신의 길을 가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무는 빈가지로 겨울을 난다. 곧 찬바람이 불어오리라. 바람이 마지막 잎들을 어디론가 몰고 가는 스산한 가을밤, 내 뒤로 이어진 길에서 만났던 잊고 지낸 징검다리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그 시절 음악에 생맥주 한잔을 곁들이면 그때 고마움이 더욱 간절해지지 않을까. 그러다가 전화나 메시지로 서로 안부라도 묻는다면 이 가을이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연은 가도 추억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붕우 작가·전 국방홍보원장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충북 진천을 지날 때면 강물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가 보인다. 가까이 가 보면 듬성듬성한 돌덩이가 크고, 이어진 길이도 제법 길어 웅장하다. 특히 모양새가 마치 용 한 마리가 꿈틀거리며 강을 헤엄치는 듯해서 장관이다. 바로 ‘농다리’다. 고려 초기 임장군이 붉은 돌로 음양을 배치해 28수에 따라 28칸으로 지었다고 한다. 물고기 비늘 모양으로 돌을 쌓아 올려 교각을 만든 후 긴 상판석을 얹은 형태로 길이는 95m 정도다. 천년의 풍파와 세찬 물줄기를 견딘 ‘농다리’는 충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됐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의 배경이기도 하다. 옛날 옛적 지혜로운 사람들이 무심히 흩어져 있던 돌덩이로 인간을 이롭게 한 아름다운 이야기다.
징검다리. 작은 개울이나 물이 괸 곳에 돌이나 흙더미를 드문드문 놓아 만든 다리를 말한다. 나그네는 이걸 밟고 물을 건너 그가 바라는 세상으로 나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징검다리를 밟고 강을 건너는 나그네가 되고, 나그네를 건네주는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서녘 강물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지나온 길을 가만히 더듬어 본다. 고향 집 앞 개여울의 작은 징검다리를 건너는 열두 살 홍안의 소년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며 그 후로 건넜던 수많은 크고 작은 징검다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저 감사한 마음만 있을 뿐 무엇 하나 갚지 못한 기억들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중 누구는 세상과 이별했고, 누구는 소식조차 끊겼으며 누구는 한참 노쇠했고, 누구는 똑같이 나이 들어 가고 있다.
나그네가 징검다리를 잊고 사는 건 자연스럽다. 특별히 징검다리가 너무 고마워 평생 가슴 깊이 간직하며 살기도 한다. 하지만 세월에 헤지고 부서지면 차츰차츰 잊게 된다. 시절인연의 뒷모습이다. 징검다리는 그런 나그네의 망각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의 일은 나그네가 강을 넘도록 돕는 것이었고, 그를 밟고 지나간 나그네가 그의 세상에 잘 당도하기를 바랄 뿐이었으니 말이다.
살아오며 누군가의 징검다리가 된 적은 있었던가. 몇몇 친숙한 얼굴이 떠오르다 금세 사라진다. 그들이나 나나 자신의 길을 가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무는 빈가지로 겨울을 난다. 곧 찬바람이 불어오리라. 바람이 마지막 잎들을 어디론가 몰고 가는 스산한 가을밤, 내 뒤로 이어진 길에서 만났던 잊고 지낸 징검다리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그 시절 음악에 생맥주 한잔을 곁들이면 그때 고마움이 더욱 간절해지지 않을까. 그러다가 전화나 메시지로 서로 안부라도 묻는다면 이 가을이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인연은 가도 추억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이붕우 작가·전 국방홍보원장
이붕우 작가·전 국방홍보원장
2024-11-20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