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정건전성 크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확장적 편성”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서도 경기 활성화를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미국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파, 국내 기업 구조조정 본격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가운데 재정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 역할을 맡겠다는 것이다.
최근 경기가 다소 회복되는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세입여건이 개선되면서 재정수지와 국가채무비율 등 재정건전성도 당초보다 양호한 수준으로 유지될 전망이다.
그렇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내년에 처음으로 40%를 돌파하게 돼 재정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숙제를 남겼다.
◇ 확장적 재정 지속…경기회복 ‘마중물’ 효과 볼까
정부는 작년보다 다소 나아진 세입 여건 속에서 내년도 예산을 편성했다.
민간소비 증가 등 내수 중심으로 경기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데다, 법인 영업실적이 개선되는 등 경제활동이 다소 활기를 띄면서 내년 국세수입은 올해 본예산 대비 8.4%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정부는 세수 결손을 막고 경제지표 전망을 현실화하기 위해 경상성장률을 4.1% 수준으로 보수적인 전망을 했다.
그럼에도 국세수입과 기금수입 등을 더한 총수입은 6.0%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인 경제여건은 아직도 여의치가 않다.
세계경제 성장과 교역량이 정체된 상태에서 브렉시트 사태가 덮쳤고, 더욱이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에 따른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 우려 등 리스크 요인도 커져가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수출 부진, 개별소비세 인하 효과 종료,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등으로 하반기 회복 모멘텀이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이 나온다.
또 구조조정이 본격 진행되면서 제조업과 청년층, 조선업 밀집지역 등을 중심으로 고용시장 악화가 예상되는 형국이다.
이에 정부는 “2017년 예산안은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확장적으로 편성”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경제 하방리스크에 대응하면서 저출산·고령화 및 산업구조 개편 등 중장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먼저 총지출은 전년대비 3.7%(14조3천억원) 늘어난 400조7천억원 규모의 ‘슈퍼예산’으로 편성했다. 예산 규모가 4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그러면서도 재정건전성은 당초 예상보다 개선된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복안이다.
내년 재정수지는 기존 2015∼2019년 계획보다 0.3%포인트(p) 개선된 국내총생산(GDP) 대비 -1.7%로 전망됐다.
늘어난 국세수입과 세계잉여금을 활용한 국가채무 상환 등 영향으로 내년 국가채무비율은 계획대비 0.6%p 낮아진 40.4%로 예상됐다. 올해 대비로는 1.1%p 늘어나며 사상 처음으로 40%를 돌파하는 것이다.
정부는 재량지출 구조조정, 유사·중복사업 통폐합을 통해 재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재정건전화법’을 제정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2차관은 25일 예산안 사전브리핑에서 “재정 건전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확장적으로 편성했다”면서도 “(올해 예산보다는) 건전성 부분도 좀 더 고려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400조원 ‘슈퍼예산’ 일자리 창출·경제활력 제고에 쏟아붓는다
정부는 내년 예산의 초점을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력 제고에 맞췄다.
그 중에서도 최우선 목표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략적 투자 확대다.
이를 위해 일자리 분야에만 17조5천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는 올해보다 10.7% 늘어난 것으로, 교육·문화 등 12대 여타 분야와 비교했을 때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일자리 예산은 청년·여성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고용서비스와 창업, 직업훈련 등 효과가 큰 분야에 중점 투자된다.
그러면서도 고용창출 등 성과가 미흡한 사업은 과감히 정리해 약 4천억원을 절감했다.
청년이 선호하는 게임·가상현실(VR) 등 유망산업 일자리 창출 기반을 마련하고,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근로환경을 조성하는 데에도 맞춤형 지원을 시행할 계획이다.
새로운 미래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예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혁신적 국가 전략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범부처 합동 수행이 필요한 9개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지역전략산업 전체 투자규모인 3조1천억원을 모두 신성장·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R&D 전체예산은 1.8% 증가에 그쳤다. 규모 자체를 늘이기 보다는 성과가 제대로 날 수 있도록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데에 집중했다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관광·스포츠·문화 부문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각종 사업에도 예산이 투입된다.
한편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부문은 올해 예산보다 2.0% 줄여잡았다.
이에 대해 박춘섭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에너지 관련 융자사업 집행이 부진한 영향”이라면서 “규제프리존법이 통과되면 산업 부문 증액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는 올해 예산보다 8.2% 감액됐다. 내년도 예산 증가액(14조3천억원) 중 9조원 이상이 지방에 배분되는데다, 이미 전 국토에 걸쳐 도로·철도 등 인프라가 상당한 수준으로 구축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회 심의 과정을 거치면서 SOC 예산이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 전문가들 “일자리 창출이 중요” 입 모아…재정확대 평가는 엇갈려
전문가들은 내년도 예산안의 핵심이 경제활력 제고와 더불어 과연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분석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은 “이번 예산안을 보면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재정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세수 증가분 10조원 정도의 절반 정도를 더 쓰고, 나머지는 국가채무 상환에 쓰는 것이 이번 예산안이다. 재원배분 방향도 균형잡힌 것 같다”면서 “일각에서는 (재정 확장 규모가) 미온적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바람직한 수준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연구부장은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방향 무게중심이 성장률에서 일자리로 옮겨갔다. 이제 성장률 3% 달성 여부는 무의미하고, 일자리가 중요한 상황”이라면서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광석 한양대 겸임교수는 “일자리 관련 투자가 선행되지 않으면 일자리 질이 떨어지게 마련”이라면서 “이번 예산안이 일자리 투자 확대의 효율화를 얘기했다는 점에서 방향은 굉장히 잘 잡았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다만 김 교수는 “청년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의 해소에 대한 얘기가 없다는 점이 한계점으로 보인다. 청년들이 회피하는 일자리의 근로조건 개선이 고려됐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또 “예상가능한 경제 하방 압력에 대한 대응책이 미진하다. 나중에 또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지 않으려면 지금 미리 더 확장적으로 재정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한편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 예산이 늘었지만 산업 SOC(사회간접자본) 등은 줄고 있어 우려된다”며 “(SOC를 비롯한) 전통적인 부분에 투자를 늘려줘야 한다. 산업정책이 제대로 돌아가야 일자리가 생긴다”고 제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