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 신화’ 이에리사의 아름다운 도전

’사라예보 신화’ 이에리사의 아름다운 도전

입력 2013-02-22 00:00
수정 2013-02-2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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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표 차로 사상 첫 여성 체육회장 불발 “체육계 개혁·변화 아쉽지만 체육인 뜻이니 받아들이겠다”

“체육인의 뜻과 결정이니 잘 받아들이겠습니다.”

사상 첫 ‘여성 스포츠대통령’의 등장은 불발됐다. 하지만 ‘사라예보 신화’를 쓴 ‘탁구 여제’의 아름다운 도전은 한국 스포츠계에 작지 않은 울림을 남겼다.

이에리사(59) 의원은 22일 진행된 제38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김정행(70) 용인대 총장에게 3표 차로 쓴잔을 들었다.

조직과 경험 등에서 상대적으로 열세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뚜껑을 여니 간발의 차였다.

자신을 늘 ‘뼛속까지 체육인’이라고 말해 온 그는 “경기인의 마음과 실제 투표자의 마음은 다를 수 있다”고 아쉬워하면서도 “체육인들이 잘하실 분을 뽑은 것이니 그 뜻을 받아들이겠다”고 깨끗하게 선거 결과에 승복했다.

이 의원은 1970년대 탁구 국가대표로 맹활약한 스타 선수였다. 1973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는 정현숙 등과 함께 구기종목 최초로 우승컵을 차지하며 한국 탁구사에 한 획을 그었다.

은퇴 이후에는 이후 탁구 국가대표 코치와 감독, 용인대 교수, 태릉선수촌장,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위원장 등을 두루 거치며 지도자, 체육행정가로서의 변신에도 성공했다.

여성이 태릉선수촌장을 맡은 것은 처음이자 유일할 만큼 이 의원은 탁구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여성 체육인으로서도 늘 새 길을 열어갔다.

태릉선수촌장으로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한국 선수단 총감독을 맡아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뒷바라지했다.

지난해 4월 제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돼 의정 활동으로 다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에 입성한 이후 1년도 채 안 돼 체육인들의 권익 증진을 위한 10건의 법안을 발의하는 등 국회의원으로서도 부지런히 뛰고 있다.

이 의원은 탁구 애호가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는 30년 가까이 친분을 쌓은 것으로 잘 알려졌다. 체육계를 대표해 대선 때 박 당선인의 선거 캠프에서 일하며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의 탄생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이에리사 의원은 지난달 30일 “많이 부족하고 준비도 되지 않았지만 뜨거운 열정만으로 아름다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며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사라예보 신화’를 쓴 이후 40년 만의 일이다.

지금까지 임명직인 체육회 부회장에 오른 여성 인사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선출직인 회장에는 도전하는 것조차도 이 의원이 처음일 만큼 여성에게는 문턱이 높았다.

이 의원도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90년간 이어온 체육계 관행을 한 번에 넘어서기는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이 의원은 “25표가 주장하는 변화와 개혁 쪽으로 체육회가 잘 추진했으면 좋겠다”면서 “경륜에 변화가 더해지질 바란다”고 신임 집행부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자신은 이제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관련 법안들이 잘 통과돼 체육계 발전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의원의 패배로 사상 첫 여성 체육회장의 선출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하지만 이 의원의 도전은 여성체육인들이 더 큰 꿈을 꾸게 하는 디딤돌이 될 전망이다. 이 의원은 “여성 체육인들이 더 클 수 있도록 문호가 더 개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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