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없이 토론 형식 수업…학교 가는 게 즐겁다는 학생
최근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기업인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국제학교 견학 기회를 마련해 초청했습니다. ‘최고의 교육환경’, ‘부유층 학생들만 가는 곳’, ‘외국 유명 대학에 진학하기에 손색없는 교과과정’ 등 그동안 풍문으로 접한 국제학교의 현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이런 풍문을 ‘노스런던컬리지잇스쿨(NLCS) 제주’에서 확인했습니다.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자리한 이 학교는 1850년 설립된 영국 명문 사립학교인 NLCS의 한국 분교입니다. 2011년 9월 문을 연 1200명 정원의 국제학교로, 교내에 24시간 운영하는 메디컬센터와 체육관, 수영장 등이 있습니다. 골프, 승마 등 방과 후 활동도 150여개나 갖춰 놓았습니다.
모든 수업은 외국인 교사가 영어로 진행합니다. 특히 교과서가 없고 교사들이 준비한 자료로 익히고 토의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수업이 인상적입니다. 이곳에서 만난 영국교사 벤 브라운(25)은 “토론하면서 수업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습니다.
구김 없고 즐거운 학생들의 표정은 이곳이 썩 괜찮은 학교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3학년까지 분당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다 엄마와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는 손모(12)군은 “수업이 정말 재밌다. 학교 다니는 게 무척 즐겁다”고 했습니다.
진학 실적도 우수합니다. 2014년 첫 졸업생 54명을 배출했고, 졸업생 가운데 일부가 영국 옥스퍼드대, 미국 예일대와 스탠퍼드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럼에도 이 학교에는 비난이 쏟아집니다. 비싼 학비 때문입니다. 이 학교 유치원, 초등학교 과정은 1년에 2840여만원입니다. 중학교는 2970여만원, 고등학교는 3480여만원 수준입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는 기숙사비 2000여만원 이상이 더 듭니다. 어림잡아도 1년에 5000만~5500만원인 셈입니다. 최근 한 국내연구소가 발표한 중소기업 직원의 평균 연봉(4200만원)을 훌쩍 뛰어넘습니다. 그야말로 사립학교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될 듯합니다.
이곳을 보고 여러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위화감을 조성하는 ‘부자학교’라는 생각 이면에 부러움도 있습니다. “돈만 있다면 우리 아이를 이곳에 보내고 싶다”는 다른 이의 말에 저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현재 JDC는 외국 유학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379만 2000㎡(115만평) 부지에 1조 7810억원을 들여 제주영어교육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현재 NLCS를 비롯해 캐나다의 ‘브랭섬홀아시아’(BHA)와 ‘한국국제학교’(KIS)가 이곳에 있습니다. 내년 9월에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SJA) 제주’가 개교하고, 나머지 3개의 학교가 2021년까지 들어섭니다.
국제학교를 짓는 공사현장을 둘러보며 보이지 않는 벽을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학교가 필요한가, 끝없이 고민했습니다. 다만 교육의 질을 높이는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방법은 결국 투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로 향하면서 정부 내년도 예산안이 책정됐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누리과정 예산을 두고 교육계 다툼이 여전하다는 말도 들립니다. 서로 자기가 맞다면서 상대에게 삿대질할 시간에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교육 투자를 어떻게 늘릴지 고민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gjkim@seoul.co.kr
2016-09-02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