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중 기자의 교육 talk] <9>TV가 갑자기 고장난 이유

[김기중 기자의 교육 talk] <9>TV가 갑자기 고장난 이유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16-01-18 18:04
수정 2016-01-1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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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의 디지털 디톡스, 부모가 먼저 모범 보여야

2주쯤 전이었습니다. 퇴근 후 집에 갔더니 TV가 꺼져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이유를 묻자 “글쎄, 왜 그런지 이유는 몰라”라고 합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하면서 TV 뒤편을 보니 코드가 전부 빠져 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아내를 돌아봤습니다. 아내는 옆에 서 있는 큰아이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저를 보더니 한쪽 눈을 찡긋합니다. 아하! 저는 그제야 무슨 뜻인지 이해합니다.

“우리 아들, 어쩌냐. 이제 재밌는 TV 프로그램은 당분간 못 보겠네.”

이렇게 저희 집 TV는 고장이 났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장이 난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죠. 근래 들어 큰아이가 TV를 너무 많이 본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아내의 ‘조치’가 단행된 겁니다. 한창 TV 보기에 재미를 붙였던 아들이 TV를 고쳐 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을까 고민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우였습니다. 이틀 정도 “TV는 언제 고치느냐”고 묻더니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큰아이는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아예 꺼내지도 않습니다. 원래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였지만 이젠 TV 없이 더 잘 놉니다.

일곱 살, 다섯 살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그나마 남들보다 잘했다고 생각한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이들한테 스마트폰 안 보여 주기’였습니다. 큰아이 돌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식당에서 목격했던 일 때문이었습니다.

돌 사진을 찍으러 스튜디오에 갔다가 음식점에 들렀는데 저희와 비슷한 또래의 부모가 아이한테 스마트폰을 들려주고 열심히 식사를 하고 있더군요. 아이가 스마트폰 게임에 빠져 있고 부모는 나 몰라라 하는 그 모습이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그 뒤 ‘우리는 저러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그 다짐을 지금까지 잘 지켜온 덕에 두 아이는 여태껏 스마트폰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많은 부모가 TV와 스마트폰 때문에 자녀와 갈등을 빚곤 합니다. 특히 요새 스마트폰에 대해 부모의 고민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시기엔 감정 조절과 의사소통 기술을 배우는 게 중요한데 디지털 기기 등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은 이를 배우는 능력이 크게 떨어집니다. 디지털 기기가 자녀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서는 인터넷 검색을 조금만 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학교에서 올바른 디지털 기기 사용법에 대해 배우는 곳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교육보다 부모의 노력이 있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최근 취재차 만난 한 공무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들의 지나친 스마트폰 사용 때문에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자녀의 스마트폰을 부모가 관리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사용하도록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친구의 도움으로 그 애플리케이션을 속이는 방법을 배웠고 아들은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결국 폴더폰으로 바꾸고 “너도 아빠처럼 폴더폰으로 바꿔 줄게”라고 했습니다. 아빠의 진심이 통해서인지 아들은 스마트폰 없이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TV가 고장 났다”는 아내의 거짓말로 저도 이제 당분간 TV를 못 보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을 듯합니다. 부모가 모범을 보이면 자녀도 따라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다시 와닿습니다.

gjkim@seoul.co.kr
2016-01-1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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