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고1 국·영·수 내신 전수조사
“국어와 영어에 비해 수학이 훨씬 더 어렵다.” “‘수포자’(수학 포기자)의 늪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일선 고교 현장에서 나오는 이런 이야기는 사실일까. 서울신문이 9일 입수한 전국 3300여곳 고교 1학년의 국·영·수 내신 성적을 전수 분석한 결과에서 국어와 영어에 비해 수학에서 낙제 기준인 D와 E등급을 받은 학생이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수학 과목의 경우 중위권 성적 분포가 두터운 국어·영어 과목과 달리 하위권이 두터웠다. 이와 관련, 일선 교육 현장에서는 “수포자를 줄이는 방향의 교육과정 개편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지난해 전국 고교 1학년 학생들의 경우 1학기에 배우는 수학Ⅰ에서 E등급의 성적을 맞은 학생의 비율만 44.0%에 달했다. 국어Ⅰ에 비해서는 17.9% 포인트, 영어Ⅰ에 비해서는 8.7% 포인트 더 높다. 현재 고1 학생들의 성적은 과목별 성취율에 따라 A~E까지 등급을 매겨 산출한다. A등급은 학업 성취율이 전체 학생의 90% 이상, B등급은 80% 이상 90% 미만, C등급은 70% 이상 80% 미만인 학생들이다. D등급은 60% 이상 70% 미만 학생들이며, 60% 미만인 학생은 E등급을 받는다.
2학기 과목인 수학Ⅱ의 E등급 비율은 36.3%로 국어Ⅱ에 비해 9.3% 포인트, 영어Ⅱ에 비해 14.7% 포인트나 높았다. 흔히 ‘수포자’라고 부르는 D등급(성취도 70% 미만)까지 합쳐 보니 수학Ⅰ에서 무려 59.5%에 이르렀다. 10명 중 6명이 사실상 수학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국어Ⅰ에 비해 15.7% 포인트나 높았다. 수학Ⅱ는 D, E등급이 53.8%로 영어Ⅱ에 비해 무려 20.3% 포인트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 시·도에서 고르게 나타났다. 1학기에 비해 2학기의 국어와 영어 성적은 크게 올랐지만, 수학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예컨대 경남 지역은 1학기 국어와 영어 점수가 각각 63.5점, 59.4점이었다. 2학기에는 이 점수가 63.1점, 80.4점으로 올랐지만, 수학은 48.8점에서 49.5점으로 소폭 올랐다. 크게 오른 영어 점수와 비교할 때에는 30.9점이나 차이가 났다.
학생들의 성적 분포를 뜻하는 표준편차는 수학이 다른 과목에 비해 1, 2학기 모두 크게 나타났다. 수학Ⅰ의 표준편차가 19.4점이었는데, 이는 국어Ⅰ에 비해 3.8점, 영어Ⅰ에 비해 2.1점 높았다. 수학Ⅱ의 표준편차 19.5점은 국어Ⅱ에 비해 2.2점, 영어Ⅱ에 비해 3.5점 높은 수치다. 표준편차가 크다는 것은 성적분포가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표준편차가 적은 국어와 영어는 평균이 두텁고 성적이 좋은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이 적지만, 수학은 하위권이 두텁고 잘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이 고르게 분포하는 셈이다.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안상진 부소장은 “수학은 쌍봉낙타의 혹처럼 상위권과 하위권에 학생이 몰린 형태인데, 하위권인 D, E 등급 학생이 다른 과목에 비해 지나치게 많다”며 “수학 과목의 특성상 낙제점의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도 중위권으로 올라가기 어려운 게 큰 문제”라고 말했다. 수포자의 늪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고2, 고3으로 갈수록 심화한다는 데 있다. 유석용 서라벌고 수학 교사는 “암기를 통해 성적을 올릴 수 있는 국어, 영어 과목과 달리 수학은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을 올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고1 때 성적이 좋더라도 2, 3학년이 되면 수준이 급격히 높아지는 탓에 2, 3학년까지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 더 적어진다”며 “적정 난이도의 수학 교육과정 개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15-09-1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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