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이슈] “내 가족이 돼달라 멍!” 은퇴 마약탐지견 견생 2막 대작전

[아무이슈] “내 가족이 돼달라 멍!” 은퇴 마약탐지견 견생 2막 대작전

김희리 기자
입력 2020-06-01 18:48
수정 2020-06-0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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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희진·김희리 기자의 아무이슈]전직 탐지견 판의 ‘퇴사 플랜’ 들어볼래요?지난달 28일 오후 2시 인천 영종도에 위치한 관세국경관리연수원 탐지견훈련센터에서는 민간 분양을 앞둔 마약탐지견 판(7), 매기(10), 청아(8)의 사회적응훈련이 한창이었다. 참을성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영국산 사냥개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인 탐지견 3마리는 부쩍 뜨거워진 오후 햇살에 연신 혀를 빼물고 헥헥거리면서도 산책 훈련, 엎드려, 기다려 등을 차례로 이어나갔다. 관세청 관세국경관리연수원은 지난 1일부터 오는 12일까지 은퇴 또는 중도 탈락했거나 모견으로 활약했던 탐지견 16마리에 대한 분양 신청을 받고 있다. 견종은 래브라도 리트리버(12마리)와 스프링어 스패니얼(4마리)다. 특유의 해맑은 성격으로 이날 훈련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도맡은 판의 목소리로 마약탐지견들의 ‘퇴사 플랜’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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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분양될 예정인 마약탐지견 판이 지난달 28일 인천 영종도 탐지견훈련센터에서 교관과 함께 ‘기다려’ 훈련을 연습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민간 분양될 예정인 마약탐지견 판이 지난달 28일 인천 영종도 탐지견훈련센터에서 교관과 함께 ‘기다려’ 훈련을 연습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판하!(‘판 하이’라는 뜻) 저는 올해로 만 7살인 ‘전직’ 마약탐지견 판이라고 해요. 키(체고) 64㎝, 몸무게(체중) 28㎏의 듬직한 체격에 가슴팍에 붓으로 찍은 듯한 흰 얼룩이 매력 포인트랍니다.

민간분양 앞둔 탐지견 16마리 지난달 사회화훈련 돌입저는 15마리의 동료들과 함께 인천 영종도 탐지견훈련센터에서 ‘견(犬)생 2막’을 준비하고 있어요. 지난달 중순부터 사회적응훈련을 시작했어요. 다음달까지 공부를 열심히 하면 미국 아메리칸켄넬클럽(AKC)에서 개발한 반려견 사회화 인증 프로그램인 CGC(Canine Good Citizen) 시험을 통과할 수 있대요. 일상에서 사람들과 어우러져서 살아갈 자격을 갖추면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교관 누나가 알려줬어요.

국내에서 마약탐지견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건 1988년 서울올림픽 때부터래요. 현재는 모두 43마리의 동료들이 전국의 공항과 항만에서 활약하고 있어요. 현장에서는 2마리가 교대로 하루 5~6회씩 탐지 활동을 해요. 사람보다 1만배 이상 뛰어난 후각 덕분에 전체 마약 적발 건수의 약 40%가 저희의 공이랍니다.

예전에는 현장을 떠난 마약탐지견은 일부 위탁 분양하거나 센터에서 돌봐주셨다는데 2012년부터는 민간 분양을 시작했대요. 지난해 하반기까지 모두 74마리의 선배들이 평생 가족을 만났어요. 심지어 말레이시아로 이민간 선배도 있다니 놀랍지요? 그동안에도 사회화훈련을 거친 뒤에 분양되긴 했지만, 올해부터는 CGC 교육을 적용해 사회적응훈련을 강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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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려’ 훈련 중인 청아. 올해로 만 8세인 청아는 7년 동안의 마약탐지견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정년퇴직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엎드려’ 훈련 중인 청아. 올해로 만 8세인 청아는 7년 동안의 마약탐지견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정년퇴직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오늘은 다른 동생들이 중성화 수술을 받고 휴식 중이라 청아 누나, 매기 누나랑 셋이서만 훈련했어요. 혹시나 저희를 번식 목적으로 악용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분양 전에는 반드시 중성화 수술을 받는대요. 청아 누나는 7년 동안의 마약탐지견 근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정년퇴직한 어엿한 은퇴견이이에요. 국제우편세관, 인천공항입국장과 화물청사를 두루 거친 인재랍니다. 보통 저희는 은퇴할 때까지 쭉 한명의 ‘핸들러’랑 짝꿍이 돼서 같이 일해요. 그래서 헤어질 때 울음 터뜨리는 짝꿍도 있어요. 그치만 속깊은 청아 누나는 슬퍼도 티도 잘 안내요. 자기가 울면 짝꿍이 더 슬퍼할 거 같았대요. 탐지견 우등생답게 시크하지만 의젓하고 똑똑해서 존경스러워요. 수건 한장 돌돌 말아서 장난감을 만들어주면 체통도 다 잊고 신나서 뛰어논다는 건 비밀이지만요!

1살부터 현장 투입… 7년 근무하면 ‘정년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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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의 담당 교관이 ‘기다려’를 연습하기 위해 매기를 훈련 연습대 위로 안아올리고 있다. 매기는 모견이 되기 위해 센터에 들어왔지만, 결국 자견을 낳지 않고 민간 분양 대상이 됐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매기의 담당 교관이 ‘기다려’를 연습하기 위해 매기를 훈련 연습대 위로 안아올리고 있다. 매기는 모견이 되기 위해 센터에 들어왔지만, 결국 자견을 낳지 않고 민간 분양 대상이 됐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매기 누나는 마약탐지견 양성을 위한 모견이 되기 위해 2012년 미국에서 왔대요. 그런데 아기 낳을 마음이 안 생겨서 그냥 센터에 눌러 앉았다고 들었어요. 원래는 센터 내 모견이 새끼를 낳으면 교육을 받고 탐지견이 돼요. 보통 생후 3개월부터 자견 훈련(강아지 때의 기본훈련)을 거치고, 생후 12개월부터 16주 동안의 성견 훈련을 받아요. 최종 평가를 합격하면 바로 현장에 투입된답니다. 자견 10마리가 교육을 받으면 그중 3마리 정도가 최종 합격한다고 해요. 청순하고 다정한 매기 누나는 사람이 쓰다듬어주는 게 제일 좋대요. 교감이 된다나? 저는 사람을 보면 같이 뛰어놀고 싶어서 좀이 쑤시는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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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인천 영종도 탐지견훈련센터에서 아직 본격적인 마약탐지견 훈련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 강아지들이 장난을 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지난달 28일 인천 영종도 탐지견훈련센터에서 아직 본격적인 마약탐지견 훈련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 강아지들이 장난을 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쑥스럽지만 저도 한때 탐지견으로 활약한 탈락견이에요. 2015년에 성견 훈련 최종 평가를 무사히 합격하고 2017년까지 인천공항세관에서 근무했답니다. 하지만 공항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쁨받고 싶어서 자꾸 아는 척하고, 궁금한 게 많아 킁킁 한눈 팔다가 정년까지 근무하지 못하고 센터로 되돌아왔어요. 탐지견에서 탈락했다고 부족한 개는 아니래요. 오히려 제 천진하고 밝은 성격이 가정견으로는 최고라고 했어요. 저 같은 탈락견들은 사실 민간 분양이 되기 전에 타 기관 분양의 기회가 먼저 와요. 인명구조견, 군견 등 다른 임무에 적합한 개가 있으면 데려간대요. 저는 기관 분양이 되지 않은걸 보니 아마 평생 가정집에서 애교부리면서 살 팔자인가봐요 히히.

“검은 개 편견 딛고 좋은 가족 찾길”제 털 색깔이 검정색이라 살짝 걱정되긴 해요. 공항에서 일할 때 제가 의젓하게 지나가기만 해도 유독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제 핸들러한테 왜 무섭게 개 데리고 다니냐고 항의하기도 했다니까요! 저는 근무 중이었을 뿐인데 조금 상처 받았어요. 우리나라는 아직 검은 개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 입양갈 때도 인기가 덜하대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착하니까 제 매력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어요.

가족을 만나게 되면 고기 반찬을 실컷 먹고 싶어요! 식탐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럽지만 탐지견들은 마약 냄새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사료나 개껌 외에 다른 간식은 일절 먹지 않았거든요. 물론 육류 함량이 높은 최고급 사료를 하루에 500g씩 먹긴 하지만요. 저랑 제 친구들 모두 남은 기간 공부 열심히 해서 평생 가족 만나러 갈게요. 곧 만나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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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인천 영종도 탐지견훈련센터에서 마약탐지견들이 사회적응훈련의 일환으로 산책 연습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판, 매기, 청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지난달 28일 인천 영종도 탐지견훈련센터에서 마약탐지견들이 사회적응훈련의 일환으로 산책 연습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판, 매기, 청아.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탐지견을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다면마약탐지견 입양을 희망하는 사람은 1·2지망을 정해 관세국경관리연수원 홈페이지(https://cti.customs.go.kr)에서 신청하면 된다. 신청서를 작성할 때는 사육환경 사진을 첨부하는 것이 필수다. 아파트, 공동주택 및 상업시설 거주자는 분양에서 제외된다. 대형견을 길러본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점이 부여된다. 또 입양한 뒤 탐지견의 안부 연락을 받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탐지견마다 차이는 있지만 지난해 기준 최대 20대 1의 경쟁률을 자랑하기도 했다.

관세청은 1차 서류심사, 2차 현장 방문 및 신청자 면담 등을 거쳐 최종 입양자를 결정할 계획이다. 서류 심사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직접 탐지견을 만나볼 수 없다. 오는 8월 최종 입양자가 결정되면 발표 후 15일 이내에 관세국경관리연수원 탐지견훈련센터를 방문해 주의사항 교육을 이수하고 인수인계서를 작성한 뒤 탐지견을 데려가면 된다.

인수한 탐지견은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없으며, 도난, 분실, 사망했을 경우에는 사진 혹은 사망진단서 등 증빙 서류를 첨부해 센터에 반드시 통지해야 한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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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 [관형사] 어떤 사람이나 사물 따위를 특별히 정하지 않고 이를 때 쓰는 말’. 아무이슈는 서울신문 기자들이 분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 전반의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취재해 이야기를 풀어놓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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