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축제장 ‘특권’ 몰아내다…공짜손님·만찬·선물 퇴출

김영란법, 축제장 ‘특권’ 몰아내다…공짜손님·만찬·선물 퇴출

입력 2016-10-06 07:33
수정 2016-10-0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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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때마다 기관장·유력인사 ‘예우’하던 관행 자취 감춰

지난달 28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변화의 길목에 섰다.

우리 사회에서 익숙지 않은 더치페이(각자내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는 지역축제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풍속도를 그려가고 있다. 관행이었던 ‘특권’들이 사라졌다. 무료 초대권, 만찬, 고가의 선물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축제는 오히려 관람객이 급증했다. 축제 분위기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기우였다.

내용만 충실하다면,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소수에 대한 ‘예우’나 ‘대접’이 아니더라도 성공적인 축제로 자리매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는 외부적 요인에 의존해서는 안 되며, 오롯이 축제 콘텐츠의 질로 승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가장 대표적인 변화는 축제장에서 ‘공짜 손님’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축제 때마다 지역 ‘유력 인사’나 기관장들에게 지급하던 무료 초대권이 자취를 감췄다. 이들에게 음식을 접대하던 오찬·만찬이나 리셉션도 더는 찾아보기 어려운 과거의 풍경이 됐다.

김영란법 시행 이틀 뒤인 지난달 30일 개막한 청주시의 청원생명축제는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실감케 한 대표적 사례다. 개장식 때 참석 인사들에게 베풀었던 시장 주관 만찬이 취소됐다.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판단에 데 따른 것이다.

횡성 한우 축제추진위원회 역시 고심을 거듭하다가 초청 인사들에게 제공하려 했던 한우고기를 ‘한우 비빔밥’으로 조정했다. 3만원이 넘는 음식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대구 국제 오페라 축제는 개막식 초청장을 아예 만들지 않았다. 공연장을 차지하던 귀빈석도 없앴다.

전주 세계소리축제도 초대권 발행과 리셉션을 모두 취소했다.

취재에 나서는 언론인들에게 지급하는 프레스 카드도 5만원 한도 내에서만 관람권하도록 제한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1만원 단위의 공연을 5회까지만 보고, 추가로 취재가 필요할 때는 개인이나 회사가 관람권을 구입하도록 한 것이다.

과거 취재진에게 완전한 무료 관람을 허용했던 것과 달라진 풍경이다.

일부 축제에서 음식을 제공해 적법성 논란이 됐다. 과거에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상이자 관행이었다는 점에서 음식 제공이 논쟁거리가 됐다는 것 자체만으로 세상이 변화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 1일 울산 울주의 언양 불고기축제에서 지역 기관장과 국회의원 등 50여명이 시식 행사장에서 소고기를 먹은 것이 울산지방경찰청 112상황실에 신고됐다.

신고가 서면으로 정식 절차를 밟지 않은 데다 당시 먹은 음식도 3만원 이하여서 경찰이 수사에 나서진 않았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 달라진 축제장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축제를 준비한 자치단체들은 고민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 관행으로 제공했던 다양한 특권이나 ‘공짜’를 없애면 축제 전체가 위축되거나 부정적인 여론을 탈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관람객이 줄지 않았다. 일부 축제는 오히려 관람객이 크게 늘어 긴장했던 축제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축제 대부분이 무료·공개 행사이거나 입장료를 저렴하게 책정한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주말에 김영란법 저촉 논란이 될 수 있는 골프 등 각종 모임을 취소하고 가족 단위로 축제장을 찾는 관람객이 늘었다는 긍정적인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청원생명축제는 5일 만에 28만8천여명이 방문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1만4천여명과 비교해 34% 증가한 것이다.

올해 입장객 가운데 노인(65세 이상), 유아(4세 미만), 오후 6시 이후 입장객 등 무료 관람객(13만6천명)을 제외하더라도 14만2천여명이 유료 관람객이다. 하루 평균 3만명에 육박하는 관람객이 입장료를 내고 축제장을 찾은 셈이다. 청원생명축제의 입장료는 5천원이다.

횡성 한우축제도 나흘 만에 76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잠정 집계돼 지난해보다 관람객이 62% 늘었다. 관람객 증가에 따라 한우고기 판매액과 농특산물 판매액 역시 각각 152%, 6%가 증가했다는 것이 횡성 한우축제위원회의 설명이다.

만찬장 공식 메뉴로 등장한 한우 비빔밥은 이번 축제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횡성 축협이 새로 선보인 2만9천원짜리 김영란 메뉴와 2만∼4만원의 농특산물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주 세계소리축제는 관람객이 15만8천명으로 지난해보다 1만2천여명이 줄었지만,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주 한옥마을에서 동시 개최하던 행사장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으로 일원화했던 것을 고려하면 선전한 것으로 전주시는 분석했다.

개막공연과 판소리 다섯 마당 등 주요 유료 공연 좌석 점유율은 99.7%로 지난해보다 되레 상승했다.

지난달 30일 개막한 안동 국제탈춤 페스티벌에도 주말에는 평균 10만명이 찾았고, 평일에도 7만명이 방문했다.

입장권 없이 참여가 가능한 행사가 많고, 탈춤 공연장 입장권도 3천∼1만원이어서 많은 시민이 축제에 몰렸다.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지역 축제가 묵은 관행을 철폐하고 건전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청원생명축제는 관계자는 “김영란법 때문에 입장객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며 “골프 등 논란이 될 수 있는 주말 모임을 포기한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몰려 전체 관람객이 증가한 성공적인 축제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행 초기인 김영란법이 지역축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위기이면서 기회인 것은 사실”이라며 “지역축제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우수한 콘텐츠를 갖추는가에 달렸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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