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식당 “예약 손님 0명…적자 위기”…호텔 레스토랑도 ‘썰렁’
일명 ‘김영란법’ 시행된 이후 외식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난달 28일 이후 식당에서는 식사 비용을 각자 계산하는 손님이 늘고, 외식업체들이 자구책으로 내놓은 3만 원 이하의 일명 ‘김영란 메뉴’가 인기를 끌고 있다.
정부서울청사 인근 식당 관계자는 “우리 식당의 경우 단품 메뉴가 1~2만원 중반대여서 김영란법의 식사 가액기준(3만원)을 넘지 않는데도 인원수대로 신용카드를 주며 각자 계산해달라는 손님들이 부쩍 늘었다”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수증은 그냥 버려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체감상 며칠 사이 영수증을 꼭 챙겨가는 손님들도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여의도 한정식집 관계자는 “예약할 때 일단 가격부터 문의하는 전화가 많아졌다”며 “메뉴 몇 개에 주류까지 시키면 1인당 식사 비용이 3만 원을 훌쩍 넘기 때문에 저녁 시간대에 ‘각자 내기’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식당들이 앞다퉈 내놓은 3만 원 이하 신메뉴는 인기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일식집의 경우 코스요리가 3만5천 원부터 시작했지만, 한 달여 전부터는 2만9천 원짜리 ‘영란세트’를 메뉴판에 추가했다.
이 식당 운영자인 오성민(38)씨는 “영란세트에 사용되는 참치 등 재료 품질은 기존 코스 메뉴와 동일하게 하되 마진율을 낮추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탕 요리 등을 빼고 세트를 구성해 회전율을 높였다”며 “현재 전체 주문의 30% 정도가 영란세트이고, 법 시행 이후 찾는 손님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고기 전문 체인점 불고기브라더스에서는 아예 메뉴판에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 만들기에 함께 한다’는 안내 문구와 함께 일품요리와 식사, 술 또는 음료까지 풀코스로 먹을 수 있는 1인당 3만 원 이하의 세트 메뉴를 출시하는 등 김영란법을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업체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업계 전반적으로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여전히 많다. 메르스 사태 때보다 타격이 더 심하다는 분석도 있다.
고급 한정식집이나 한우구이 전문점, 고가의 호텔 내 레스토랑들은 이미 법의 영향을 실감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일 점심께 기자가 찾은 서울 시내의 한 특급호텔 일식당 홀에는 손님 3명이 전부였다. 이 식당은 가장 저렴한 코스 메뉴 가격이 13만 원이다. 단품 메뉴 역시 가격대가 3만 원부터다.
이 일식당 직원은 “원래 점심때 룸은 다 찼었는데 법 시행 이후로 룸도 대부분 비어있다”며 “그렇다고 3만 원 메뉴를 내놓는 건 재료 특성상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했다.
같은 호텔에 있는 중식당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중식당 직원은 “김영란법에 저촉되는지 아닌지를 묻는 고객 문의가 많다”며 “가령 돌잔치를 하는데 친척 중 한 분이 공직자인데 괜찮으냐는 등의 문의가 있었는데 우리도 잘 모르기 때문에 확실한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주 고객이 공무원이었던 정부세종청사 주변 음식점들도 오찬이나 만찬 등 단체 예약 손님이 크게 줄어 울상이다. 아예 이달 중순까지 예약이 단 한 건도 들어오지 않은 곳도 있다.
세종시에 상주하는 공무원은 “3만 원 미만 식사가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지금은 청사 밖에서 식사 약속을 잡는 것 자체가 눈치 보이는 시기인 것 같다”며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고, 동료들과 점심은 며칠 째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외식산업중앙회 관계자는 “김영란법의 취지 자체는 좋다고 생각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웅크리고 만남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외식업계가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며 “메르스 사태 이후에도 매출 회복이 완전히 되지 않아 지금도 어려운 상황에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