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선박결함, 쿼터 채우려 무리한 조업, 퇴선시기 놓쳐”
1일 오후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침몰한 사조산업 ‘501 오룡호’ 선원들의 구조소식이 들여오지 않는 가운데실종 선원 가족들은 사고 원인과 초기대응 등에 여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가족들은 36년이나 된 낡은 배로 악천후 속에서 배정된 물량(어획 쿼터)를 채우려고 무리하게 조업하다가 사고를 불렀고, 배가 침수된 후에 신속하게 퇴선명령을 내리는 등 초기 대응을 신속히 하지 않은데다 구조작업에도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사조산업 측은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해 가족들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실종선원 가족들이 제기하는 의혹과 선사 측이 현재까지 내놓은 해명을 정리했다.
◇ 왜 침몰했나…가족들 “낡은 배에 결함 가능성”
사조산업 측은 어획물 처리실에 잡은 고기들을 넣는 작업을 하는데 한꺼번에 많은 물이 들어찼고 물고기 때문에 배수구가 막혀 배가 기울기 시작했고, 선원들이 배를 다시 세우려고 노력해 어느 정도 복원됐다고 판단해 펌프로 배수작업을 했는데 갑자기 배가 심하게 기울어 오후 4시께 퇴선명령이 떨어져 선원들이 탈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선원 가족은 이런 설명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지은 지 36년이나 돼 낡은 501오룡호의 선체 결함 등으로 침몰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도 노후 선체에 균열이나 구멍이 생겨 일시에 많은 바닷물이 들어오면서 침몰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김길수 한국해양대 교수는 “이 배가 오래된데다 파도가 아주 세, 배가 높이 쳐들어 지는 순간 배 밑바닥을 때려 구멍을 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선체 밑바닥에 있는) 어창에 물이 들어왔다는데 어창 밑 철판이 1㎝ 두께인데 이 철판이 어떤 식으로든 균열이 가서 작은 구멍이 생겼거나 약간 녹이 슬은 상태에서 파도 세게 맞아 구멍이 생겨 그쪽으로 물이 들어왔을 개연성이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실종 가족 대책위는 아무리 많은 양의 바닷물이 한꺼번에 어획물 처리실에 들어왔다고 해도 어획물 처리실 배수 시스템이 정상 작동했다면 침몰사고로까지 이어졌을 개연성이 매우 낮지 않으냐는 입장이다. 어획물 처리실에 구멍이 났다든지 배수 시스템 등 선박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사조산업은 오룡호는 올해 7월 사고해역으로 떠나기 전 점검을 마쳤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어획물 처리실에 구멍이 나서 배에 물이 들어왔고 침몰사고로 이어졌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며, 선체에 구멍이 났거나 파손됐을 개연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 “골든타임 놓쳤다” 선사 퇴선명령 제때 했나
실종 선원 가족들은 배에 이상이 생기고 나서 침몰하기까지 4시간 넘게 여유가 있어 좀 더 일찍 퇴선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주장한다. 또 선사 측이 비상시 매뉴얼을 제대로 가동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501오룡호에 이상이 생긴 게 현지시간으로 낮 12시 30분이었지만 퇴선명령은 오후 4시께 내려졌다.
사조산업 측은 퇴선명령을 선장의 판단 몫이라고 해명했지만, 가족들은 “선장에게 책임을 떠넘긴다”고 반발하며 “위기상황에서는 선원 안전이 최우선인 만큼 선사에서 적극적으로 퇴선명령을 했어야 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회사는 퇴선 명령이 오후 4시에야 내려진 것은 오룡호 측에서 펌프를 이용해 물을 퍼내 선박이 어느 정도 복원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선장의 판단을 존중했고 배가 기울기 시작하고 나서 오룡호 측에서 배수작업을 해 배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는 상황보고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회사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 쿼터 채우려 악천후 속 무리한 조업 했나
지은 지 40년 가까이 돼 쓰지도 못하는 배를 외국에서 사와 수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강풍과 높은 파도가 이는 악조건에서 무리하게 조업시킨 게 근원적인 문제라고 선원 가족은 주장한다.
사고 전 통화에서 할당받은 어획량을 다 잡았는데 선사에서 추가 조업지시를 했다고 들었다는 선원들의 말을 근거로 제시했다.
애초 할당량보다 많은 양의 생선을 잡으라는 지시 때문에 낡은 선박이 악천후에 조업에 나섰다가 사고가 난 것 아니냐는 게 가족들이 제기하는 의문이다.
사조산업은 501오룡호의 선령이 36년이지만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고, 2010년 국내로 들여올 때 러시아선급에서 검사를 받았으며 올해 2월 한국선급의 검사에서도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오래된 배이긴 하지만 안전에 문제는 없었다는 것이다.
또 기상상황이 나쁠 때 조업 여부는 현장상황을 잘 아는 선장이 전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다른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어획 목표량에 관해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선사는 밝혔다.
한국과 러시아 정부간 협상으로 3만t을 할당받았는데 애초 할당량도 어획하지 못했고, 추가로 러시아에서 1만t을 더 주는 바람에 국내 5개 원양업체 소속 트롤어선이 5척이 조업을 연장하게 됐다고 사조산업은 밝혔다.
◇ 악천후 등 대비 매뉴얼 있었나
선원 가족들은 초속 20미터가 넘는 강풍이 불고 4~5미터의 파도가 치는 악천후에 왜 피항하지 않아 사고로 이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도 악천후에는 안전한 곳으로 피항하는 게 최선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조산업 측은 피항과 조업 여부는 현지상황을 가장 잘아는 선장이 판단할 문제라고만 해명했다. 사실상 선원의 안전을 위해 악천후 등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는 매뉴얼이 없다는 의미이다.
◇ 구조활동에 문제 없나
오룡호 수색·구조 작업을 주관하는 러시아 극동 캄차카주 주도의 페트로파블롭스크-캄차트스키 해양조정구조센터 측은 ‘1일과 2일 수색작업에서 모두 4척의 빈 구명뗏목과 발견했을 뿐 생존자는 찾지 못했다’고 전해 왔다.
또 ‘2일 바닷물 속에서 구명동의를 입은 선원의 시신 1구를 발견했지만, 파도가 높아 인양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밝혔는데 사조산업 측은 2일 구명뗏목 1척만 발견했다고 했다.
선원 가족들은 “수색·구조작업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며 선사 측 구조활동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사조산업은 현재 수색·구조은 러시아 당국에서 지휘하고 있고 국내로 전해 오는 소식은 구조작업에 참여하는 다른 선박에 있는 한국인 감독관으로부터 듣다보니까 러시아 당국보다 정보를 늦게 접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