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처 급조 ‘님을~’ 합창단 일부 ‘일당 5만원 알바’

보훈처 급조 ‘님을~’ 합창단 일부 ‘일당 5만원 알바’

입력 2014-05-18 00:00
수정 2014-05-18 16:5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보훈처 “지역별 연합 합창단으로 행사 뜻 깊게 거행” 홍보”속아서 왔다”, “모자이크 해달라”…실상은 ‘립싱크 합창단’

5·18 민주화운동 34주년 기념식이 ‘주인공’인 5·18 피해자들이 빠진채 치러져 씁쓸함을 남기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이번 기념식의 주제를 ‘5·18 정신으로 국민화합 꽃 피우자’로 정했다.

5·18 정신을 통해 지역, 계층, 세대가 모두 하나가 되자는 의미라고 보훈처는 설명했다.

그러나 보훈처의 화합 추진 방식은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고 있다.

행사에 불참한 5·18 단체 회원들은 ‘보훈처의, 보훈처에 의한, 보훈처를 위한 기념식’이라고 비판했다.

◇ 학생 등으로 객석 1천500석 가까스로 채워

국회가 촉구 결의한 ‘님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것이 무산된데 반발해 유족, 부상자 등 5·18 피해자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기념행사위원회는 기념식을 보이콧했다.

전날 광주를 찾은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도 뜻을 함께 했다.

지난해 취임 이후 기념식을 찾았던 박근혜 대통령도 참석하지 않았다. 통상 대통령 불참시 총리가 대독했던 대통령 기념사도 총리 기념사로 대체됐다.

보훈처는 상당수가 텅 비게 된 객석 1천500석을 가까스로 채웠다.

학생들이 참석자의 절반에 육박했으며 보훈처 직원, 보훈단체 관계자, 경찰도 유족 등의 빈자리를 메웠다.

일부 보훈단체 회원들은 행사 전 지부별로 버스를 빌려 기념식에 참석, 빈 자리를 메우려 했으나 5·18 단체의 반발을 우려해 승용·승합차로 행사장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5·18 단체는 “보훈처가 5·18 단체 회원과 광주시민의 빈자리를 보훈단체 회원들로 채우는 ‘관제 기념식’을 연출했다”고 반발했다.

◇ 전국 연합 합창단원 상당수는 ‘일당 5만원 알바’…노래도 몰라 ‘립싱크’

보훈처가 뜻깊은 행사를 거행하겠다며 방점을 찍은 합창단 가운데 일부는 ‘일당 5만원’ 알바인 것으로 드러났다.

보훈처는 340명의 합창단원을 소집해 흰색 상의를 입혀 공연석과 유족석에 나눠 앉혔다.

소복을 입고 기념식에 참석하는 5·18 희생자 어머니들이 자리를 비우게 된 점을 감안해 흰 옷의 합창단원으로 착시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5·18 관계자들은 주장했다.

전국 연합 합창단이라고 보훈처는 내세웠지만, 실상은 광주의 아마추어 합창단과 예술고 학생, 대학생이 다수를 이뤘다.

광주 지오이아·빛고을 시니어·음사랑·북구청 시니어·남구청 합창단과 세종시 예총·어머니 합창단, 기타 개인 합창단으로 구성됐다고 보훈처는 밝혔다.

합창단원 일부는 “일당 5만원에 동원됐다”, “5·18 단체가 요청한 것으로 잘못 알고 왔다”며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기념식 실황 중계에 얼굴이 나가면 안 되니 모자이크 처리를 해달라는 요구도 있었다.

합창단이 급조된 탓에 ‘님을 위한 행진곡’ 외에 생소한 ‘오월의 노래’까지 부르게 된 일부 단원은 공연 중 노래를 부르는 척 하거나 아예 입을 벌리지도 못했다.

한 합창단원은 “정말 오고 싶지 않았지만 한 다리 건너 ‘형님, 동생’의 부탁을 받고 공연을 안 할 수도 없었다”며 “보훈처가 ‘님을 위한 행진곡’ 거부로 망쳐놓은 기념식의 한 단면일 것”이라고 비판했다.

행진곡 연주 시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흔들 수 있도록 광주시가 참석자들에게 나눠준 소형 태극기를 보고 보훈처 직원들은 “누가, 왜 나눠주는 것이냐”고 무전을 주고 받으며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경과보고 부실·오해 소지

기념식 공식 순서에 포함된 광주지방보훈청장의 경과보고도 논란을 낳고 있다.

전홍범 광주지방보훈청장은 기념식 경과보고에서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광주시민과 학생들이 부당한 국가 권력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이라고 5·18을 정의했다.

핵심 내용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 ‘5월 18일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학생들과 계엄군 충돌’, ‘5월 20일 광주시민 저항’ 등으로 간략히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왜 수백 명의 시민이 희생됐는지, 34년에 걸쳐 기념식이 거행되는 이유를 알 수 없게 하는 부실한 경과보고라고 평가했다.

특히 마지막 날인 ‘5월 27일 계엄군의 광주시민 해산 시도’라는 문구와 관련해서는 불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주체를 광주시민으로 오해하도록 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산’ 대신 ‘강제해산’, ‘진압’ 등 정부의 폭력을 암시하는 용어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주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피해자인 5·18 단체 관계자들이 번갈아 맡던 경과보고를 최근 몇년간 광주지방보훈청장이 하면서 민주화운동 발발 배경, 부족한 정부의 해결 의지 등 내용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있다”며 “시민, 대학생의 집회 때문에 모든 일이 벌어진 것으로 경과보고도 왜곡되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 ‘주인’ 유족 등은 주변 겉돌아

기념식이 열린 시각 망월동 5·18 구묘역에서는 광주와 전남 진보연대, 한국대학생연합, 이정희 대표 등 통합진보당 등 관계자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대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님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는 ‘염원의 글’을 적은 종이로 학, 배, 꽃을 접어 제단에 바쳤다.

유족들은 기념식장에도, 구 묘역에도 가지 못하고 단체로 오가는 참석자들을 실어 나르는 관광버스를 지켜보기도 했다.

5월 어머니집 회원인 임현서(66·여)씨는 “남편이 34년 전 이날 금남로에서 군인들에게 맞고 있던 어린 학생들을 구하려다가 곤봉으로 폭행당해 숨졌다”며 “이런 날 주인은 몰아내고 보훈단체나 일당 동원한 사람들에게 주인 행세 시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