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대표간 ‘格’ 강조는 과거 비정상 관행 탈피 차원지나친 원칙 중시로 대화기회 무산 우려 지적도
남북 양측이 11일 당국회담 수석대표 ‘격(格)’을 맞추는 협상에 실패, 12일 열릴 예정이던 회담 자체가 무산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코드가 재삼 주목받고 있다.회담 무산의 직접적 원인이 된 ‘격’ 문제는 청와대에서 먼저 제기됐다.
지난 10일 청와대 관계자는 “당국자 회담에서 격이 서로 맞지 않으면 시작부터 상호간 신뢰하기가 다소 어려운 점이 있지 않겠는가”라며 “그런 격은 서로가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적 자세로 정말 국제 스탠더드가 적용돼야 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이런 언급은 같은 날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외교안보장관회의 직후 나온 것이어서 박 대통령의 직접 발언이거나, 최소한 의중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과거에 열렸던 남북 양측의 회담을 보면 북측에서는 우리 측보다 아래급 인사가 나왔던 ‘비정상적’ 관행을 ‘정상적’으로 회복해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남북간 만남의 ‘전범’을 세우겠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됐다.
정부도 이러한 원칙 아래 북한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애초 차관급으로 제시했던 우리측 대표단의 급을 수정하지 않으면서 맞섰고, 결국 북한은 일방적으로 회담 보류를 통보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과거에 해왔던 것처럼 굴종이나 굴욕을 강요하는 행태는 발전된 남북관계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10년 전에 잘못된 것을 계속 그렇게 가야 하나.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한다”며 “지금부터 하는 것은 서로 정상적으로 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이 바라보는 감성과 시각에 맞춰서 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새 정부는 남북간 만남에서 양측 대표의 ‘격’을 맞춰야 한다는 원칙을 수정할 계획이 없음을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이러한 원칙은 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에서 중시하는 또다른 코드인 ‘신뢰’와도 연결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누가 봐도 회담이라고 하는 것은 상호 존중, 신뢰가 중요하다”며 “장관 대 장관이 만났을 대 서로 합의한 것은 신뢰할 수 있지만 격을 다르게 해서 합의한 내용을 신뢰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이러한 원칙이나 신뢰 중시가 지나쳐서 모처럼 찾아온 남북간 대화 기회를 날릴 수 있다는 우려섞인 지적도 나온다.
진보정의당은 논평을 통해 “지금 논란의 핵심이 되는 남북 당국회담의 급은 이전 전례에 따르면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우리 정부가 진정으로 북한과 대화를 통해 현안들을 풀어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북측 단장의 격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해도 통일부 장관이 당국회담에 나서서 북한을 설득하는 아량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남한에 대화제의를 하고 나선데는 박 대통령의 취임후 일관된 대북 메시지가 주효했다는 분석이 많았는데, 과연 이번의 ‘격 맞추기’ 원칙론이 북한을 다시 한번 움직이게 할지, 아니면 뒷걸음질치게 할지 그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