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초에 여론 선점해야”…당론보다 증세대상 축소 “정밀타격”
더불어민주당이 추미애 대표의 ‘법인세 손질’ 발언을 계기로 21일 이른바 ‘부자증세’를 위한 세제개편을 본격화할 태세를 보였다.국정과제를 확정 지은 상황에서 재원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비판 여론이 점점 커질 수 있는 만큼, 지지도가 탄탄한 지금 시기에 가장 어려운 과제를 돌파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간 이어져 온 ‘부자감세’를 원위치로 되돌리겠다고 지지자들에게 강조해왔다. 따라서 집권 초기에 이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언제든 조세저항이 터져나오거나 야권을 중심으로 반발이 불거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원내지도부를 중심으로는 한층 신중한 기류도 감지된다.
특히 추 대표가 언급한 증세론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초고소득자와 재벌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핀셋 증세’라는 점을 앞세워 조세저항 최소화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당내에서조차 “결국은 국민이 부담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증세론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나와 이후 논의 과정에서 진통을 예고했다.
추 대표는 전날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법인세를 손대지 않으면 세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2천억원 초과 초대기업에 대해서는 과표를 신설해 25%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세에 대해서도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 강화 방안으로 현행 40%로 되어있는 5억원 초과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42%로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발언은 당내 협의를 거친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 내에서는 부자증세 방향에 대해서는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모습이다.
이미 민주당은 법인세 정상화 등 부자증세 방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바 있다.
전날 발표한 국정과제만 보더라도 복지 재원이 늘어날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증세를 피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아울러 국정과제 발표 후 복지정책만 늘어놓고 재원대책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면서, 이를 진화해야 한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변재일 전 정책위의장은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이상 언젠가는 돌파를 해야 할 문제”라며 “그렇다면 국정지지도가 높은 집권 초기에 조세정의를 앞세워 실행에 옮기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동시에 민주당은 일부 대기업과 초고소득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증세일 뿐 일반 국민이나 중소기업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워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증세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며 조세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이를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애초 민주당 당론은 과표 500억원 초과기업에 대한 법인세 정상화였는데, 어제 추 대표 발언은 이를 2천억원 기준으로 끌어올려 대상 기업의 수를 더 줄였다”며 “크게 무리가 없는 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진 전략기획위원장은 통화에서 “추 대표가 언급한 기준에 따라 증세를 하면 적용대상이 되는 것은 초고소득자 2만명, 대기업 500개 정도”라며 “이는 일반 기업이나 국민에게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핀셋증세’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 역시 “모든 기업이 아닌 정교한 계산을 통해 일부 대기업만 대상으로 하는 ‘정밀타격’ 세제 개편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참여정부 때 종합부동산세(종부세)에 얽힌 나쁜 기억이 있지 않나. 서민들과는 관계가 없는 세제개편이었음에도 여론이 나빠진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이 ‘노블레스 오블리쥬’ 정신으로 더 부담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세제개편에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해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세는 기본적으로 격렬한 찬반 논쟁을 수반하는 민감한 사안인 데다, 일각에서는 섣부른 증세론이 여론 악화를 불러온다면 자칫 내년 지방선거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특히 야당이 반발할 가능성이 커서 원내지도부는 상황을 주시하며 차분하게 대응한다는 기조이다.
우원식 원내대표는 이날 CBS라디오에 나와 “법인세 정상화 논의는 필요하며, 지금 한쪽으로 몰려있는 돈을 정부가 재분배해야 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부가 먼저 할 도리를 다해 세제 행정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우 원내대표는 “충분한 논의를 통해 사회적 동의를 거쳐야 하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한층 더 분명하게 증세론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4선 중진의원인 이상민 의원은 이날 PBC라디오에 나와 “정부가 자신들의 구조조정이나 비용을 절감하는 노력도 없이 곧바로 증세하겠다고 하면 쉽게 돈을 먹겠다는 것밖에 더 되겠나”라며 “법인세를 올려도 결국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지지율이 높은 집권 초기에 돌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 “지지율은 하나의 지표일 뿐”이라며 “이때 밀어붙이자는 것은 올바른 자세도 아니고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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