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등 기존 채널 단절 상황서 새 제안…北반응 주목
정부가 29일 통일부가 아닌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 이름으로 내년 1월 중 남북 당국간 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안해 주목된다.지난 7월 발족한 통준위는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을 만든다’는 목표 아래 통일 공감대 확산과 연구 과제 선정, 부처간 협업 지원 등 주로 국내 내부의 통일 준비를 위해 활동해 온 기구이다.
이 기구의 성격을 보면 수십년간 통일부가 전담해 온 남북회담의 기능을 대행하기에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더구나 민간 전문가들이 폭넓게 활동하는 민관합동기구인 통준위가 남북 당국간 회담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나서는 것 자체가 다소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정부는 통준위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준비하는 여러 사업을 계획하고 있고, 이를 실행하기에 앞서 북측과 먼저 협의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이유로 통준위를 회담 제안 주최로 내세웠다.
정종욱 통준위 민간 부위원장은 “통일 준비라는 것은 남북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의를 해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대단히 절실하게 느꼈다”며 “정부 정책으로 우리 구상을 구체화하기 전에 북측 대표들을 만나서 우리 입장을 설명해주고 그동안 준비해온 여러 과제를 부연 설명을 하면서 북측의 호응을 얻어야 되겠다는 필요성을 느껴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통준위가 이날 발표한 내년도 중점 추진 사업은 ▲ 민간교류 확대 ▲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 근본 해결 ▲ 비무장지대(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 작업 구체화 ▲ 남북 개발협력 추진 등이다.
내년에 전반적인 남북교류 확대를 추진하는 통준위를 회담의 주체로 내세워 북측의 호응을 끌어내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측은 지난 2월 1차 고위급 접촉 이후 우리의 2차 고위급 접촉 제안에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극비리에 진행된 지난 10월 군사당국 접촉도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집권 3년차이자 광복 70주년의 의가 있는 내년에 남북관계에서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대화 채널’의 개설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통준위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통준위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대통령 직속 기구란 점에서 통일부보다는 청와대 등 핵심 당국과의 직접 소통을 선호하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쉽지 않겠느냐는 전략적인 의도도 깔린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통준위에서 사회·문화분과위원장을 맡은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을 대표해 최근 개성공단을 잇달아 방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비서 등 북측 당국자를 만나 남북대화 의지에 공감대를 이루고 온 것도 하나의 배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 24일 김 비서를 만나고 온 김 전 장관은 “김양건 비서가 ‘내년이 6·15 15주년인데 남북관계가 정말 좋아지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통준위를 ‘흡수통일의 전위부대’로 간주하며 줄기차게 비난해왔다는 점에서 정부가 제안한 ‘통준위-통전부’ 대화채널을 북한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청와대와 국방위원회 간의 회담 틀이 무산된 상황에서 대화 주체를 바꾼다는 의미는 있다”면서 “북한이 격을 맞추는 의미에서 통전부에서 응하지 않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로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