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6개 학과 석사 과정 미달
열악한 처우 등 연구 인력들 이탈
학령인구 감소가 이미 대학원에도 영향을 미치는 점을 고려하면 그동안 늘어난 대학원 정원을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18일 서울대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학과별 신입생·재학생 충원율’을 보면 2023학년도 석사 과정 신입생을 뽑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12개 학과 중 6개(50%) 학과에서 등록 인원이 입학 정원에 미치지 못했다. 박사 과정은 13개 중 8개(61.5%), 석사·박사(석박) 통합과정은 12개 중 8개(66.7%)가 미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공과대학도 석사 과정 16개 학과 중 10개(62.5%), 박사 과정은 16개 중 8개(50%), 석박 통합과정은 14개 중 13개(92.9%)가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자연대 물리학 전공의 석박 통합과정의 경우 2020년 신입생 정원의 79.1%가 등록했지만 올해는 61.5%만 채웠다. 같은 기간 공대 기술경영·경제·정책 전공의 경우 석사 과정 신입생 충원율이 84.2%에서 68.4%로 떨어졌다. 2020년 신입생 정원의 81.5%를 채웠던 컴퓨터공학 석박 통합과정도 올해 72.9%에 그쳤다. 공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재료공학부, 건설환경공학부 등도 석사·박사·석박 통합과정 모두 신입생이 입학 정원보다 적었다.
서울대 전체로 넓혀 보면 대학원 진학 기피는 더 여실히 드러난다. 석사 과정에선 138개 중 80개(58.0%), 박사 과정 126개 중 61개(48.4%), 석박 통합과정에선 56개 중 41개(73.2%) 학과에서 정원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대학원생 감소는 대학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연구’를 수행할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공계 대학원생의 감소는 과학기술 연구에 차질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원뿐 아니라 이공계 전반이 의대 열풍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며 “가장 상징적인 서울대마저 이런 상황이면 다른 대학들은 더 심각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주요 대학 내 대학원도 신입생 정원을 채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2023학년도 전국 대학원 정원 내 신입생 충원율은 82.4% 수준이다.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연세대 일반 대학원의 올해 정원 내 신입생 충원율은 91.7%였다. 고려대는 94.5%, 서강대 70.9%, 한양대 85.3%로 정원을 다 채운 학교를 찾기 힘들었다. 한 수도권 대학 관계자는 “이공계는 특성상 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에 대학원생이 더 필수적이지만 수도권 대학도 80% 정도밖에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박사과정에선 외국인 학생이 국내 학생보다 더 많은 곳도 있다”고 전했다.
지방대 대학원은 이보다 더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대는 83.2%, 경북대 86.8%, 전남대 79.2% 등으로 수도권 대학보다 10% 포인트 정도 낮았다.
이공계로 끌어와야 할 인재를 의학계열에 빼앗기고 있지만 장기적 유인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데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마저 삭감되면 이공계 기피가 심화할 수 있다.
김정호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젊은 연구원들까지 이공계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염려된다”면서 “외국인 학생으로 채워도 해외로 기술 유출이나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어 장학금 확대 같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미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학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공계 대학원은 10년 넘게 정원을 늘려 왔다. 지금까지 버틴 게 신기한 것”이라면서 “석사 과정을 마쳐도 취업률이나 처우는 학부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도 “대학원생에 대한 낮은 대우와 부정적 인식 개선 등 대학원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인재 양성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23-10-19 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