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수정이를 할퀴고 떠난 수마… 마을회관서 3주째 “갈 곳 없어요”

10세 수정이를 할퀴고 떠난 수마… 마을회관서 3주째 “갈 곳 없어요”

이근아 기자
입력 2020-08-23 20:52
수정 2020-08-24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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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속수무책’ 주거빈곤 아동 94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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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에 있는 10살 수정이네 집의 모습. 가족들의 책과 앨범 등까지 물에 전부 젖어서 늘어 놓고 말리는 장면.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충청북도에 있는 10살 수정이네 집의 모습. 가족들의 책과 앨범 등까지 물에 전부 젖어서 늘어 놓고 말리는 장면.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긴 장마 피해 취약 계층에게 더 혹독
생필품·식료품 사야 하는데 엄두 안 나

“주거권·학습권 보장할 대책 필요”

“피해 트라우마 없게 정서적 지원”

충청북도에 사는 10살 수정이(이하 가명)는 3주째 할머니와 마을회관에서 지낸다. 이달 초 장맛비로 집에 물이 들어차 장판과 벽면이 모두 망가졌기 때문이다. 수정이네 집은 주변보다 낮은 지대라 피해가 더 컸다. 할아버지는 장판이 벗겨져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바닥에 이불을 깔고 지내며 집 수리를 한다. 낮에는 갈 곳 없는 수정이도 그 옆에서 그나마 수리한 TV를 보며 시간을 때운다. “컴퓨터가 망가져 온라인 강의를 못 들어 속상하다”는 수정이는 “아끼던 책은 안 젖어서 다행이다”며 애써 웃어 보였다.

중부지방 기준 54일간 이어진 장마가 끝났다.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는 평등하지 않았다. 취약 계층에게 더 혹독했다. 수정이처럼 주거빈곤가구에 속하는 아동일수록 속수무책이다. 17살 한준이네도 사정은 비슷하다. 장맛비에 집이 물에 잠겨 온 가족이 몇 날 며칠 물을 퍼내야 했다. 못 쓰게 된 가전제품은 물론 생필품과 식료품을 새로 사야 하지만,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의 201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수정이와 한준이처럼 주거빈곤 상태에 놓인 아동 수는 94만 4000명에 달한다. 전체 아동인구의 9.7% 수준이다. 전문가는 특히 아동이 있는 빈곤가구가 재난을 겪을 경우, 자력으로 피해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정부가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임세희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해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우선입주 대상에 아동 빈곤가구를 포함하는 정책을 낸 것은 매우 의미 있지만, 일부 가정은 임대주택에 입주하는 데 필요한 보증금조차 없다”면서 “아동에게 주거권은 곧 생명권인 만큼 정부가 적극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해를 겪은 아동들이 원래의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수정이를 돕는 세이브더칠드런 충북지역 상담원은 “아동의 신체적 건강도 물론 중요하지만 갑작스러운 수해 피해로 수정이가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지 않도록 정서적 지원에 힘쓰고 있다”면서 “아동의 학습권도 중요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환경에서 꾸준히 교육받을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2020-08-2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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