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어산지. 로이터 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12일 레인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과 위키리크스 사이의 고조된 갈등이 어산지를 내치기로 결정한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해킹을 통해 미국의 군사 기밀 유출을 도운 혐의로 미국의 수배를 받아오던 위키리크스 창립자 어산지는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도피, 7년째 망명 생활을 해왔다.
남미에서 대표적인 반미 노선을 걸어왔던 에콰도르 정부가 대사관에서 그가 지낼 수 있도록 도와준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난 3월 INA페이퍼스(INApapers.org)라는 한 익명 사이트에 모레노 대통령과 관련된 정보가 무더기로 올라오면서 어산지와 에콰도르 정부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유출된 200건의 개인 이메일과 사진 중에는 모레노 대통령이 화려한 침대 위에서 바닷가재 요리르 먹고 있는 사진, 그의 아내가 보낸 문자 메시지 등 은밀한 정보 등도 포함돼 있었다.
화려한 사생활이 담긴 이 사진들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등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에 찍혔다는 점에서 모레노 대통령은 크나큰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
당시 모레노 대통령은 즉각 유출 주범으로 위키리크스를 지목했다.
위키리크스가 모레노 대통령에게 타격이 될 수 잇는 정보 유출을 감행하겠다고 예고해온 터였기 때문이다.
위키리크스는 모레노 대통령의 개인정보 유출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며 극구 부인했다. 그러나 에콰도르 정부는 상응 조치를 경고했고, 결국 지난 11일 런던 주재 자국 대사관의 문을 열어 경찰 진입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어산지 체포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지속적인 ‘압력’ 때문이라는 점도 맞다.
미국은 에콰도르 정부에 어산지를 넘기라는 요구를 계속 해왔고, 에콰도르 역시 모레노 정권 출범 이후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특히 구제금융 체제 하에서 도움을 얻고자 이러한 요구를 수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NYT는 오랫동안 남미의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에콰도르 정부가 순순히 미국의 요구에 ‘굴복’한 것이라기보다는, 에콰도르 정부 스스로 어산지 추방을 원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어산지가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그와 에콰도르 정부와의 관계는 ‘위협과 협박, 유출’의 연속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대선을 앞둔 지난 2016년 10월 위키리크스가 당시 힐러리 클린턴 후보 측에서 해킹한 이메일 수천통을 공개하자, 에콰도르 대사관은 어산지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가 미 대선 관련 정보 유출과 폭로를 총지휘하며 선거에 개입하려 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위키리크스 측은 에콰도르 정부가 미국의 압력을 수용하고 있다면서 에콰도르 정부를 겨냥한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그러자 얼마 후 어산지의 대사관 내 인터넷 접속이 다시 가능해졌다.
이처럼 협박과 유출, 화해가 반복되고 이에 따른 긴장 관계가 팽팽하게 이어져오다 모레노 대통령의 은밀한 개인정보까지 무더기로 공개되는 상황까지 이르면서 결국 어산지와 에콰도르 정부의 관계가 파국을 맞았다는 것이다.
에콰도르 정부 관계자들은 어산지가 저지른 ‘방대한 범죄 리스트’로 인해 그의 추방을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모레노 대통령도 지난 11일 그에 대한 보호 조치 철회를 발표하면서 그가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의 보안 카메라를 차단하는 것은 물론 보안 파일에 접근하고 경비원들과 충돌하는 등 망명과 관련한 국제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 백악관 중남미 전문가였던 페르난도 커츠는 NYT에 “에콰도르 정부 역시 어산지가 떠나길 원했다”면서 “모레노 대통령에게 어산지는 적이었고, 그를 미국에 넘김으로써 미국과 관계 개선도 할 수 있다는 것은 금상첨화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