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군 “1천193명 사망”…국제사회 “극악 범죄” 맹비난
시리아 사태가 화학무기 참극으로 내전 발발 2년6개월 만에 중대 고비를 맞았다.시리아 반군과 인권단체 등은 21일(현지시간) 정부군이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을 화학무기로 공격해 1천300여명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이 사실로 드러나면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지난 1998년 쿠르드 마을에 화학무기로 5천명 가까이 학살한 이후 최악의 화학무기 참사로 기록된다.
세계 각국은 즉각 극악한 전쟁범죄라고 비난하며 유엔 조사단의 조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 등을 촉구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반군에 대한 군사지원 등 적극적인 개입을 앞당길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이날 화학무기가 사용됐다는 증거가 속속 제기됐으나 시리아 정부는 “전부 거짓말”이라고 반박해 사용 주체에 대한 논란이 예상된다.
또 유엔 화학무기조사단이 이미 다마스쿠스에 파견된 상황에서 화학무기 공격을 감행한 배경에 의문도 제기됐다.
◇25년 만에 빚어진 최악의 화학무기 참극
이번 참극은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SOHR)를 통해 가장 먼저 알려졌다.
SOHR는 정부군이 다마스쿠스 동쪽 외곽도시인 구타 지역에 전투기 폭격과 로켓 공격을 여러 차례 감행했으며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현지 활동가들을 인용해 발표했다.
SOHR가 처음 화학무기 사용 주장을 제기할 때만 하더라도 사망자는 수십명인 것으로 전해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망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반군인 ‘시리아혁명총위원회’(SRGC)는 SOHR의 발표 직후 사망자가 200명 이상이라고 밝혔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650명으로 늘었다는 집계를 내놨다.
이 수치는 반군 연합체인 시리아국민연합(SNC)이 이날 오후 5시께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는 1천193명으로 늘어 반나절 만에 사망자 규모가 수십명에서 1천명을 넘겼다.
시리아는 극도의 언론통제로 반군 측의 주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들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1998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자행한 쿠르드족 대학살 이후 최악의 화학무기 참사가 되는 셈이다.
시리아 현지 언론들은 정부의 발표만 의존하고 있어 이날 화학무기 사용을 부인했으나 활동가들이 유튜브 등에 올린 영상과 사진을 보면 반군 측의 화학무기 사용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이 영상에는 사상자들이 피를 흘리지 않아 외상은 없는 것으로 보였으며 상당수는 어린 아이였다. 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거나 입에 거품을 문 채 발작을 일으키는 등 독성 물질에 중독된 증세를 보이는 모습도 담겨 있다.
현지 활동가는 AP통신과 스카이프로 연결된 통화에서 “부상자들의 동공이 수축했고 입에 거품이 있으며 눈과 코 주위의 피부가 회색으로 변했다”며 화학무기로 공격받은 증세를 보였다고 밝혔다.
부상자들이 몰려 병원이 넘쳐나고 의료진과 약품 등이 부족해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국제사회 “극악한 범죄” 비난…서방 군사개입 주목
미국 정부는 시리아의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선’으로 설정하고 반군에 대한 무기지원 등 군사개입 의사를 밝혔던 만큼 이번 사태가 가져올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이 지난해 12월 금지선 카드를 꺼내 든 이후 정부군과 반군은 상대방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며 비난하는 ‘진실 게임’ 양상을 보였다.
또 서방과 러시아는 각각 정부군과 반군 편으로 갈려 자체적으로 확보한 화학무기 사용 증거를 유엔에 제출하는 등 첨예한 대립을 보였다.
이날 화학무기 공격은 사상자 규모나 관련 증거 영상 등의 측면에서 지금까지 의혹 공방을 벌였던 전례와 달리 화학무기 사용이 상당히 명백해 보인다는 점에서 서방의 개입 움직임이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국제사회의 시리아 해법을 도출하려는 논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 평화회담을 열기로 지난 5월 합의했으나 차일피일 미뤄졌으며 최근에는 9월에도 열리기 어렵다는 러시아 측의 입장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유럽연합(EU)과 프랑스, 영국,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 각국이 일제히 우려를 표명하고 국제사회의 개입을 촉구하고 나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를 거론할 방침이라며 “사실로 드러나면 시리아에서 화학무기 사용이 확대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언젠가는 관련자가 기필코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아랍연맹 나빌 알 아라비 사무총장은 정부군의 화학무기 공격은 “극악한 범죄”라고 맹비난하고 국제사회에 구호 지원도 요청했다.
◇시리아 정부 전면부인…논란 여지
시리아 정부는 이날 오전 국영방송을 통해 즉각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해 화학무기 사용 주체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소지를 남겼다.
외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반군 측의 주장은 전부 거짓말”이라며 “정부가 그런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런 발표는 시리아 정부가 내전 이후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화학무기 사용 의혹에 대응하던 방식이었다.
국영뉴스통신사인 사나(SANA)도 익명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유엔 화학무기 조사단의 조사활동을 방해하려는 시도”라며 반군 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 외무부도 반군 측의 주장은 “사전에 계획된 도발”이라며 정부 측 편에 섰다.
러시아는 지난달 반군이 신경가스를 사용했다는 주장과 관련한 보고서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제출한 바 있다.
유엔 화학무기조사단이 지난 19일 다마스쿠스에 파견된 상황에서 이번 공격이 일어난 점도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공격이 다마스쿠스와 인접한 곳에서 일어나 유엔 조사단의 즉각적인 조사가 가능한데도 반군 측의 주장대로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중동 외교 소식통은 “관련 보도와 영상 등을 보면 화학무기 사용이 명백해 보이지만 이 시점에 이런 공격을 감행한 배경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유엔 조사단이 화학무기 사용을 증명한다고 해도 사용주체가 누군지에 대한 논란도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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