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모두 수사 주체 될 수 있어…미국 측 태도 미정
미국 수사당국이 9일(현지시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혐의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고 있다고 밝혔다.특히 윤 전 대변인이 정상적인 수사절차를 밟지 않고 귀국함에 따라 향후 미국 당국이 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것인지, 또 그 과정에서 한국 당국의 협조를 요청할 것인지가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대통령의 외교일정을 수행하는 정부 고위인사의 ‘불미스런 일’이 사실상 확인되자 미국 교민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연합뉴스가 9일(현지시간) 단독 입수한 미국 워싱턴DC 경찰국의 윤창중 대변인 성범죄 관련 신고접수 보고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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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럼프 국장은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외에 추가적인 언급을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가 이날 단독 입수한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신고 당시 피해 여성은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의 한 호텔 내에서 용의자가 “허락 없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grabbed)”고 진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호텔은 윤 전 대변인과 청와대 기자단이 묵었던 호텔에서 차량으로 약 10~15분 가량 떨어진 곳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숙소인 블레어 하우스(영빈관)에서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사건 발생 시간은 7일 오후 9시 30분, 사건 종료 시간은 오후 10시이며 8일 오후 12시 30분(정황상 8일 0시30분으로 추정)에 전화로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적시돼 있다.
이와 함께 피해자 정보는 영문 머리글자 2개로 처리된 이름과 함께 여성이라는 사실 외에는 표시돼 있지 않으며, 용의자 정보는 56세 남성으로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이 사건이 성범죄 담당 부서에서 근무하는 형사 2명을 비롯한 5명의 경찰에 의해 처리됐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수사방향은 = 현지 소식통은 향후 미국의 수사방향에 대해 “아직 미국 경찰 측에서 주미 한국 대사관에 이 사건과 관련해 협조를 요청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이런 협조 요청에는 통상적으로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는 현지 사법 당국이 판단할 사안”이라고 전제하고 “한미 양국은 형사ㆍ사법 공조 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에는 범죄인 인도와 위탁 조사, 미국 경찰의 한국 현지 조사 등이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번 의혹을 특정하지 않고 통상적으로 볼 때 한국에서 성범죄 수사는 강간치상이나 아동 상대 성폭력 등을 제외하고 상당 부분 피해자 본인의 고소로 이뤄지는 ‘친고죄’인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본인 신고는 물론 수사관의 인지로도 수사할 수 있다.
한미 양국의 관련 법률이나 1999년 양국 간에 체결된 범죄인 인도 조약 등에 따라 피의자의 신병이 한국에 있다면 미국 수사 당국은 증거 수집, 진술 확보 등을 위해 상대국에 수사 공조 요청을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윤 전 대변인은 외교사절 비자를 받고 미국에 들어왔지만 외교관 여권이 아닌 관용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외교특권을 향유받을 자격도 없다”고 설명했다.
◇ 윤 전 대변인, ‘조사’안받고 귀국= 미주 최대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인 ‘미시USA’에는 이날 오전부터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이 박근혜 대통령 워싱턴 방문 수행 중 대사관 인턴을 성폭행했다고 합니다”라는 글이 올라 큰 파문을 일으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귀국하기도 전에 윤 대변인을 전격 경질했다.
미시USA의 관련글은 당초 ‘미시 토크’(Missy Talk)라는 대화방의 연예 코너에 실렸으나 이날 ‘핫이슈/사회/정치’ 코너로 옮겨졌으며, 지금까지 조회수가 1만5천건이 넘었고 200여건의 댓글이 올랐다.
현지 외교 소식통 등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은 한ㆍ미 정상회담이 개최된 지난 7일 호텔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현지에서 채용된 인턴 여성 A씨와 함께 있었다.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7일 밤 9시30분부터 30분 동안 ‘불미스런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피해여성은 다음날 12시30분에 경찰에 전화로 신고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대사관에서 인턴을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미시USA’에 글이 올라간 것으로 보아 7일 밤 이후 점차 이런 저런 얘기들이 돌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지 경찰에 다음날 신고가 접수된 직후 윤 대변인은 주미 한국대사관의 차량 지원 없이 공항에 와서 직접 항공권을 발권해 급거 귀국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는 미국 현지시간으로 8일 낮 1시30분께 워싱턴 댈러스공항에서 대한항공편으로 출발, 한국시간으로 9일 오후 4시5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또 귀국 비행기 티켓을 댈러스공항 발권 창구에서 신용카드로 구입했으며, 좌석은 400여만원에 달하는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현지 당혹ㆍ술렁= 주미 대사관은 이날 오전부터 긴급 대책회의를 수시로 열며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 방문 행사라는 큰 외교 이벤트 도중 벌어진 사상 초유의 일이라 어찌하면 좋을 지 모르겠다”면서 “일단 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없는 우리 처지를 이해해달라”고 호소했다.
대사관 관계자들은 하루 전만 해도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성과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되면서 “현장에서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고 자축하는 분위기였으나 예상치 않은 악재가 터져 더욱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워싱턴DC는 물론 미국 교민사회는 술렁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방미 성과로 한껏 자부심이 고취되던 상황에서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는 사건이 벌어진 데 대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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