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추천제’ 논란 1년만에 새 개편안 내놔
삼성그룹이 1995년 ‘열린 채용’이란 이름으로 지금의 신입사원 채용제도를 도입한 지 20년 만에 채용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한해 9천명가량 뽑는 삼성그룹의 신입사원 공채 필기시험인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에 매년 20만명의 지원자가 몰리면서, 마치 대학입시처럼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는 등 사회적 부담이 가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풀이된다.
삼성그룹이 1995년 하반기부터 도입한 열린 채용은 당시 국내 산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열린 채용은 기존의 서류전형을 아예 폐지해 입사 지원에 학력 제한과 성 차별을 없애고, 상식문답 위주의 기존 필기시험 대신 지원자의 종합적인 자질을 평가하는 SSAT를 도입한 것이 골자였다.
인위적인 입사 문턱을 낮춰 보다 폭넓게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취지였다.
특히 삼성은 SSAT에 공을 들였다.
언어, 수리, 추리, 공간지각, 지각속도력 등으로 잠재된 자질을 평가할 수 있게 설계하고, 많은 문항을 짧은 시간 안에 답하게 해 응시자가 검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좋게 나오도록 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것이 삼성의 의도였다.
이는 같은 열린채용은 이후 삼성그룹이 인재 경영을 해나가는 토대가 됐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삼성그룹의 위상이 높아지고 입사 경쟁이 급격히 과열되면서 열린 채용의 당초 취지가 퇴색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원자가 급증하자 사설학원이 생겨 SSAT 대비 강의를 운영하면서 SSAT는 ‘삼성 고시’로 불리고 있으며, 1권당 2만원 가량하는 SSAT 관련 서적도 50여 종이나 나와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SSAT 특강이나 모의시험까지 보고 있다.
그러자 삼성그룹은 SSAT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열린 채용의 근본 취지를 살리기 위해 지난해 초 대대적인 채용제도 개편을 추진했다.
개편안의 골자는 서류전형의 부활이었다. 사전 전형을 통해 응시자를 선별함으로써 SSAT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서류전형을 그냥 부활시킬 경우 특정 대학·지역을 우대한다는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삼성은 보완책으로 ‘대학총장 추천제’를 마련했다.
각 대학별로 추천권을 할당해 추천을 받은 지원자에게는 서류전형을 통과한 것과 같은 SSAT 응시자격을 부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초기에는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어도 3∼4년 시행하다 보면 대학에서도 삼성 신입사원 배출을 위해 학교 내에서 검증된 인재를 골라 제대로 된 추천을 해줄 것으로 삼성은 판단했다.
하지만 대학총장 추천제는 시행도 하기 전에 ‘대학 줄세우기’라는 거센 비판에 부딪혔다. 각 대학의 항의 전화가 빗발치고 지역에서도 차별을 이유로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대학총장 추천제에 발목이 잡히면서 삼성은 개선안 자체를 백지화하고 채용제도 개선을 전면 유보했다.
이후 삼성그룹은 올 상반기와 하반기 공채를 다시 기존 방식대로 SSAT와 면접만으로 진행했으며, SSAT 내용만 일부 개편해 적용했다.
그러다 근 1년 만에 ‘직무적합성 평가’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새로운 채용제도 개편안을 내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