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 대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와의 챌린지 매치 2차 대국.
2016. 03. 10 < 구글 제공 >
2016. 03. 10 < 구글 제공 >
인간 최고수 이 9단은 10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최강 인공지능(AI)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2국에서 백을 쥐고 211수 만에 불계패했다.
전날 불계패의 충격을 받았던 이 9단은 이로써 5번기 가운데 두 대국을 연속으로 내줘 자존심 회복에 실패했다. 이 9단이 3국마저 잃는다면 우승 상금 100만 달러(약 11억원)는 날아간다. 제3국은 하루를 쉰 뒤 12일 오후 1시 같은 장소에서 속개된다.
이 9단은 완벽한 계산력으로 무장한 알파고와 시종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우상귀에서 막판 투혼까지 발휘했지만 역전하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인류 최강 기사를 이긴 인공지능(AI) 컴퓨터 알파고(AlphaGo)가 두 번째 대국에서는 초반부터 변칙적인 수법을 꺼내들어 프로기사들을 놀라게 했다. 반면 저돌적인 기풍인 이세돌 9단은 오히려 알파고의 도발을 응징하지 않고 안정적인 두터운 바둑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지켜본 프로기사들은 “1국과 달리 알파고가 기존의 통념에 벗어난 수를 많이 뒀다”면서 “1국에서와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알파고가 강수로 일관하던 1국과 달리 2국에서는 프로기사들의 예측을 넘어서는 변칙적인 수를 많이 뒀다는 것이 프로기사들의 평가다.
초반부터 변칙적인 수법 들고 나온 알파고
2국에서는 전날과 돌을 바꿔 흑을 쥔 알파고는 대국 선언 5초 만에 예상대로 우상귀 화점을 차지했다. 전날 소목 포석을 펼쳤던 이 9단은 화점에 돌을 놓았다. 하지만 알파고는 1분30여초 생각 끝에 3수째에 예상을 깨고 좌상귀 소목을 차지했다. 알파고가 프로기사와의 대국에서 소목에 둔 것은 처음이어서 주위를 대국장 주변을 술렁이게 했다. 알파고는 지난 10월 유럽챔피언 판후이 2단과의 대국에서도 5판 모두 화점 포석을 펼쳤고, 전날 이 9단과의 1국에서도 화점에 돌을 놓았기 때문이다.
특히 알파고가 우하귀에서 정석을 펼치다 갑자기 13수째에 손을 빼고 상변에서 ‘중국식 포석’을 펼쳐 이 9단을 당황하게 했다. 이 9단은 당황한 듯 초반에 5분 가까이 장고를 하다 좌변을 갈라쳤다. 바둑TV 해설을 맡은 김성룡 9단은 “인간 바둑에는 없는 수”라며 놀라워했다. 함께 해설을 한 이희성 9단은 “알파고가 흑 37수까지 둔 상황에서 첫 수부터 기보를 만들어서 프로기사들에게 던져주고 물으면 프로의 바둑은 아니라고 할 것”이라면서 “알파고가 둬야 할 곳에 두지 않고, 변칙적인 수를 많이 뒀다”고 말했다.
‘돌부처’로 스타일 바꾼 이 9단
포시즌스호텔에서 한국어 공개 해설을 맡은 유창혁 9단은 “이 9단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보통 때보다 생각이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저돌적인 기풍의 이 9단이 평소와는 상반된 기풍을 보여줘 ‘돌부처’ 이창호 9단의 모습이 떠올리게 했다. 이 9단은 알파고가 예상을 뛰어넘는 변칙적인 수를 놓고, 싸움을 먼저 거는 등 도발적인 바둑을 뒀지만 응징하지 않고 안정을 추구하는 듯 두터운 바둑으로 일관했다.
유창혁 9단은 “이창호 9단은 전성기 때 ‘너무 참는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 9단은 이창호 9단과 정반대인데 오늘은 이창호 9단처럼 두고 있다. 돌들이 빈틈이 없다”고 해설했다. 그러면서 “알파고도 오늘은 상식 밖의 수를 놓고 있지만, 이 9단도 예측이 안 된다”며 “철저하게 마음을 먹고 나온 듯하다”고 말했다.
이는 전날 1국에서의 충격적인 패배의 영향인 것으로 분석했다. 유창혁 9단은 “이 9단이 상대인 알파고를 많이 의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알파고의 뛰어난 형세 판단
대국 중반을 지나 이 9단이 유리한 국면으로 접어들자 알파고가 즉시 삭감에 들어갔다. SBS 바둑 해설을 맡은 송태곤 9단은 “알파고가 자신의 실리가 부족한 것을 느낀 것 같다”라며 “인공지능임에도 불구하고 형세라는 걸 인식하고 있다. 정말 인간처럼 승부호흡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알파고가 이 9단의 집을 일부 삭감하며 선수를 잡은 뒤 순식간에 상변의 맥점을 짚어가며 세력을 지켰다. 이에 유창혁 9단은 “알파고가 최선의 수보다는 전체 형세를 보는 전략적인 바둑을 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창혁 9단은 알파고의 바둑 스타일을 지켜보면서 “알파고는 전투력이 세다. 수읽기가 날카롭고 급소를 찾아내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먼저 초읽기에 몰린 이 9단
이 9단은 초반부터 많은 시간을 쓰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60여수가 진행된 시점에서 제한시간 2시간 중 40분 가량을 소비했다. 20분을 소비한 알파고보다 두배나 많이 시간을 사용했다.
이 9단이 장고를 이어가자 김성룡 9단은 “이 9단이 웃음기가 사라진 표정으로 나타났다”면서 “오늘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나온 듯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9단이 오늘 시간이 없다. 초반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썼다”고 말했다.
알파고와 대국에서 처음으로 초읽기 모습이 연출됐다. 초읽기는 제한시간을 다 쓴 뒤 1분 3회를 사용할 수 있다. 이 9단은 알파고가 20분이 남은 상황에서 초읽기에 들어갔다.
또 패도 처음으로 등장했다. 앞서 김성룡 9단은 “패는 (사람끼리 대결에서)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해 많이 나온다”면서 “알파고는 기세가 없기 때문에 패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