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뚫렸는데… ‘구멍’ 난 매뉴얼

전국 뚫렸는데… ‘구멍’ 난 매뉴얼

김우진 기자
입력 2024-05-29 23:59
수정 2024-05-2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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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오물 풍선’ 테러·GPS 전파 교란 공격… 재난문자엔 핵심 문구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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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날려 보낸 ‘대남 오물 풍선’이 29일 전국 곳곳에서 발견됐다. 사진은 충남 지역에서 발견된 풍선의 모습. 합동참모본부 제공
북한이 날려 보낸 ‘대남 오물 풍선’이 29일 전국 곳곳에서 발견됐다. 사진은 충남 지역에서 발견된 풍선의 모습.
합동참모본부 제공
북한이 지난 28일 오후 9시부터 날려 보낸 ‘대남 오물 풍선’이 29일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풍선과 잔해가 발견된 지역에서 혼란이 빚어졌다. 3~4m 크기의 흰색 풍선 안에는 분뇨를 비롯해 종잇조각, 쓰레기, 거름으로 추정되는 오물 등이 들어 있었다. 풍선으로 인한 피해는 아직 없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육안으로는 풍선 안에 무엇이 있는지 식별이 어려운 데다 타이머와 기폭장치 등이 달려 있는 경우도 있어 이를 접한 시민들은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더욱이 재난문자에는 ‘야외활동 자제 및 식별 시 군부대 신고’라는 표현만 있을 뿐 ‘열지 말아야 한다’ 등 가장 핵심적인 문구는 포함되지 않았다. 폭발물 등 위험 물질이 들어 있었다면 큰 피해로 이어질 뻔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오물 풍선 등 미확인 물체에 대비한 위기관리 대응 매뉴얼 교육이나 안내를 받은 시민도 찾아보기 어려워 매뉴얼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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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경남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의 한 논에서 경찰이 북한의 대남 전단 살포용 풍선을 조사하고 있다. 전날 밤 날아온 이 풍선은 수도권·강원 등에 이어 경남과 전북 등 남쪽 지역에서도 발견됐다. 대부분 흰색 풍선 안에 거름과 쓰레기 등 오물이 들어 있는 형태였는데 내용물이 없는 풍선도 있었다.  거창 뉴스1
29일 경남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의 한 논에서 경찰이 북한의 대남 전단 살포용 풍선을 조사하고 있다. 전날 밤 날아온 이 풍선은 수도권·강원 등에 이어 경남과 전북 등 남쪽 지역에서도 발견됐다. 대부분 흰색 풍선 안에 거름과 쓰레기 등 오물이 들어 있는 형태였는데 내용물이 없는 풍선도 있었다.
거창 뉴스1
합동참모본부와 경찰 등에 따르면 오물 풍선은 이날 외교부 청사, 예비군 훈련장, 초등학교 앞 도로, 중학교 운동장 등 전국 곳곳에서 발견됐다. 이날 낮 12시 42분쯤 서울 종로구 재동초등학교 인근에서 오물 풍선이 터지는 소리를 들은 조모(67)씨는 “점심 먹고 나오는 길에 ‘펑’ 소리가 나서 달려가 보니 풍선이 터져 있었다”며 “혹시나 화학물질이나 몸에 해로운 물질이 들어 있을까 봐 마스크를 바로 착용했다”고 했다. 남모(67)씨도 “터진 풍선 안에는 쓰레기와 배설물 등이 뒤섞여 있었다”며 “서울에도 저런 게 떨어진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중학교에서도 오전 11시 55분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떨어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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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안에 알 수 없는 전자장비가 설치돼 있는 모습. 페이스북 캡처
풍선 안에 알 수 없는 전자장비가 설치돼 있는 모습.
페이스북 캡처
학교 내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백모(65)씨는 “11시 30분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풍선이 터졌고, 쓰레기가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고 했다. 이 학교 학생인 지모(15)군은 “학교 운동장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게 있어서 무서웠다”며 “‘혹시 안에 이상한 무기가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기도 했다”고 말했다. 오물 풍선은 종로구와 노원구 외에도 마포구, 영등포구 등 서울 곳곳에서 발견됐다.

접경 지역인 경기와 강원에서도 신고가 잇따랐다. 오후 2시쯤 경기도 소재의 한 예비군 훈련장을 비롯해 파주·동두천·평택 등에서 발견된 풍선 안에 거름 또는 전선으로 추정되는 물건 등이 들어 있었다. 강원에서도 오전 0시 12분 화천, 오전 1시 양구, 6시 13분 철원 2건 등 풍선 잔해 발견 신고가 들어왔다.

접경지에서 직선거리로 250㎞ 이상 떨어진 경북 영천에서도 오전 7시 40분쯤 풍선 잔해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오전 5시 30분쯤에는 경남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한 논에서, 오전 5시 45분쯤에는 전북 무주군에서도 오물 풍선이 눈에 띄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날 오후 9시부터 이날 오후 5시까지 오물 풍선 관련 112 신고는 모두 299건이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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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살포한 전단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된 직후 28일 오후 11시 34분 경기도 일부 지역에 발송된 재난문자가 휴대전화에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살포한 전단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된 직후 28일 오후 11시 34분 경기도 일부 지역에 발송된 재난문자가 휴대전화에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전국 곳곳에 날아든 오물 풍선에 시민들이 공포를 느꼈지만, 별도의 행동 요령 안내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소방청은 오물 풍선 등 대남 전단은 대공 업무이기 때문에 국민행동요령 등을 사전 안내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차원의 위기관리 대응 매뉴얼이 있긴 하지만, 대남 전단과 관련해선 최근 홍보나 교육은 진행한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게다가 재난문자에도 핵심적인 행동 요령인 ‘손을 대지 말고’ 신고하라는 내용이 빠져 있었고, 매뉴얼에 따른 행동 요령 및 사후 대응 안내도 없었다.

이에 화학 테러 등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오물 폭탄 등 미확인 물체에 대비한 구체적인 행동 요령을 매뉴얼에 적시하고, 상황 발생 시 이를 시민들에게 제대로 안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송창영 광주대 방재안전학과 교수는 “풍선에 화학물질이라도 들어 있었다면 큰 피해가 발생했을 상황이었다”며 “재난 관리에 대한 초기 대응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단순히 상황 발생 안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 요령과 대처 방법 등 구체적인 내용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2024-05-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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