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믿었던 유튜버의 ‘뒷광고’가 주는 배신감

[핵심은] 믿었던 유튜버의 ‘뒷광고’가 주는 배신감

곽혜진 기자
입력 2020-08-15 15:29
수정 2020-08-1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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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채널 ‘보겸 BK’에서 보겸이 뒷광고를 사과하는 모습 캡처.
유튜브 채널 ‘보겸 BK’에서 보겸이 뒷광고를 사과하는 모습 캡처.
시청자분들의 사랑에 보답하는 방법은 재미있는 영상을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광고가 포함되고 몰입도가 떨어질까 봐 광고 고지에 대해서 소홀했습니다 - 보겸

최근 광고 방송들을 진행하면서 시청자분들께 제대로 고지를 하지 않고 단지, 콘티를 기획하면서 오로지 화젯거리나 극적인 연출에만 신경 썼습니다 - 양팡

이번 주도 내내 ‘뒷광고’ 논란이 유튜브를 달궜습니다. 뒷광고란 특정 제품을 홍보하는 콘텐츠를 제작하고서 업체로부터 대가를 받은 사실을 숨기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관행처럼 이루어지던 뒷광고가 최근 한 유튜버의 폭로로 사회적 공분을 사자, 수많은 유튜버가 광고 표시 없이 올린 영상을 뒤늦게 부랴부랴 수정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영상을 올려도 비판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유튜버들은 고개 숙이는 영상을 재차 올려야 했습니다. 양팡은 ‘평생 반성하면서 살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만을 남긴 후 모든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했습니다. 쯔양은 더는 방송을 이어가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구독자가 수백만 명에 이를 만큼 사랑받던 이들인데 사람들은 왜 한순간에 등을 돌렸을까요? 단지 ‘대가를 받고 제작한 광고성 콘텐츠’라는 사실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뒷광고 논란의 핵심을 짚어드리겠습니다.
유튜브 채널 ‘슈스스 TV’에서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제품을 소개하는 장면 캡처.
유튜브 채널 ‘슈스스 TV’에서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제품을 소개하는 장면 캡처.
■ 핵심 ① 신뢰를 기반으로 팬덤 형성되는 유튜브

우선 유튜브에서 소비되는 콘텐츠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유튜브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콘텐츠의 대부분은 채널 운영자의 꾸밈 없는 모습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용자들에게 마치 오래 알아 온 친구,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이웃 같은 이미지를 느끼게끔 해야 하죠.

일환으로 유튜버들은 구독자들의 애칭을 짓고 댓글도 적극적으로 달며 주기적인 라이브 방송을 통해 소통을 이어갑니다. 채널 운영 기간이 늘수록 콘텐츠 생산자와 이용자 간 심리적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형성됩니다.

그러다 보니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대가를 받고 브랜디드 콘텐츠(제품 광고를 목적으로 제작된 콘텐츠)를 올리거나 리뷰 영상에 협찬받은 제품을 끼워 넣는 행위가 어색해지는 겁니다. 업체 입장에서도 광고라는 사실이 전면에 드러나길 꺼리고요.

이런 속성 때문에 유튜버들은 광고 표시를 가급적 숨기고 싶어 합니다. 댓글에서 은근슬쩍 언급하거나 ‘더보기’ 버튼을 따로 눌러야 볼 수 있는 곳에 표기하는 정도로 넘어갑니다. 심지어 어떤 유튜버는 광고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도 합니다.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운영하는 ‘슈스스TV’가 특히 비판의 대상이 됐던 이유도 광고 영상에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제품)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광고라는 사실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정도를 넘어 이용자를 속이고 기만했다는 것이죠.

결국 핵심은 그동안 쌓아온 인간적 신뢰를 깨뜨렸다는 배신감입니다.

상처받은 이용자들은 뒷광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구독 자체를 취소해버립니다. 현재 논란이 된 유튜브 채널마다 ‘이 사람은 불법행위를 한 사람입니다. 당장 구독을 취소하세요.’라고 쓴 댓글이 다수의 추천을 받아 상단에 올라온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유튜브 채널 ‘문복희 Eat with Boki’에서 문복희가 음식을 품평하는 모습 캡처
유튜브 채널 ‘문복희 Eat with Boki’에서 문복희가 음식을 품평하는 모습 캡처
■ 핵심 ② 불분명했던 광고 표시 기준이 혼란 야기

유튜버들을 무작정 비난하기도 힘듭니다. 지금까지는 광고 표시에 대한 명확한 제도적 기준이 없었습니다. 콘텐츠 제작자가 자체적인 판단 아래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기해왔습니다. 의도적으로 누락한 이들도 있겠지만, 필요성을 인지 못 한 이들도 있을 겁니다.

앞으로는 기준이 분명해집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다음 달 1일부터 뒷광고를 금지하는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 지침’ 개정안을 시행합니다. 이를 지키지 않은 사업자에게 광고로 얻은 매출액이나 수입액의 2% 이하 또는 5억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인플루언서(소비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가 경제적 대가를 받고 제품 리뷰 등 광고성 콘텐츠를 올릴 때는 ‘협찬을 받았다’, ‘광고 글이다’ 같은 문구로 밝혀야 합니다.

꼼수도 통하지 않습니다. 잘 안 보이는 곳에 조그마한 글씨로 표시하는 것도 위반으로 봅니다. 소비자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적절한 크기와 색상으로 또렷하게 써야 합니다. 우회적으로 ‘체험단’, ‘Thanks to’처럼 애매한 문구를 사용하는 것도 안 됩니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릴 때는 제목과 영상 시작 부분, 끝부분에 경제적 대가를 받았다고 표시해야 하고, 영상을 중간부터 보는 이용자도 알아챌 수 있도록 사이사이에 반복적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재생 시 5분마다 표기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는 경제적 대가를 받았다고 사진 안에 표시해야 한다. 다만 사진과 본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내용이라면 본문 첫 부분이나 첫 번째 해시태그에 표시해도 됩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광고주, 즉 사업주와 사업자 단체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식이어서 인플루언서들을 제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공정위는 인플루언서도 사업자로 해석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유튜브 채널 ‘양팡 YangPang’에 올라온 사과문 캡처.
유튜브 채널 ‘양팡 YangPang’에 올라온 사과문 캡처.
■ 핵심 ③ 제재도 필요하지만 스스로 책임감 느껴야

때문에 국회에서는 인플루언서에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이 인플루언서들이 뒷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표시·광고의 공정화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인플루언서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상품을 홍보하고 기업으로부터 대가를 받고도 이를 알리지 않으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소비자들이 허위광고에 속아서 제품을 사는 피해를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현행 표시광고법은 책임을 사업자에게만 지웁니다. 공정위는 지난해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 7개 기업이 인플루언서를 통해 위장 광고한 사실을 적발하고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인플루언서들은 관련 규정이 없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습니다.

제도가 바뀌면 인식도 바뀌어야 하겠죠. 이용자들이 진정 원하는 건 법규를 얼마나 세세하게 따르느냐가 아닙니다.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의적 책임입니다.

최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대중의 관심이 쏠렸던 카걸은 아예 채널의 콘셉트 자체가 거짓이라며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채널을 운영하는 부부가 실제로는 평범한 소시민이면서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재벌인 것처럼 포장했다는 겁니다.

채널에서 슈퍼카를 주로 소개해온 카걸 측은 “멋진 자동차를 타고 전 세계를 탐험하는 채널”이 콘텐츠의 주제였으며 “콘셉트를 유지한다는 명목 아래 멋진 장소, 멋진 자동차,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기에만 몰두했다”고 해명했습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유튜브 채널 ‘CARGIRL’ 운영자들. tvN 캡처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유튜브 채널 ‘CARGIRL’ 운영자들. tvN 캡처
진솔한 일상을 보여주는 게 유튜브의 미덕이라고 여기는 이용자들은 이마저도 기만이라고 봤습니다. 이 채널 역시 모든 콘텐츠를 비공개로 전환했습니다. 광고뿐만 아니라 삶을 거짓으로 꾸미는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과거엔 공직에 있는 사람만을 공인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언행에 사회적 책임이 뒤따른다는 뜻에서 사인과 구분했습니다. 미디어의 파급력이 갈수록 커지는 요즘엔 인플루언서들도 공인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플루언서들에게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끼칠 영향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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