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해외파견’ 청와대에 청탁 시도 확인…‘재판거래’ 새 국면

‘법관 해외파견’ 청와대에 청탁 시도 확인…‘재판거래’ 새 국면

강경민 기자
입력 2018-07-29 11:13
수정 2018-07-2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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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이정현 등 靑인사위 접촉해야”…‘조직편익 위해 재판개입’ 의심‘징용소송’ 태도 급선회…“헌법관점에서 청구 정당성 인정”→“쟁점 매우 어려워”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연합뉴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연합뉴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법관들의 해외 공관 파견을 늘리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정현 의원까지 접촉해 청탁하려 한 정황이 확인됐다.

양승태 사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소송의 결론을 박근혜 정부 내내 미룬 데는 판사들의 외국 파견 자리를 늘리는 등 법원행정처 조직 내부의 ‘복지’를 증진하려는 계획이 크게 작용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에 개입하려는 부당한 시도가 비단 상고법원 도입이라는 정책적 목적에서만 기획된 게 아니라 소수 엘리트 법관 조직인 법원행정처의 이익을 좇아 진행됐음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검찰의 수사 추이가 주목된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PC 하드디스크와 USB(이동식저장장치)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법관 파견 추진 대책’ 등 해외 파견지 확보 방안을 담은 문건을 다수 확보했다.

2012년부터 작성된 이들 문건에는 “2010년 중단된 주미 대사관, 주오스트리아 대사관 파견을 되찾아야 한다”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대법원은 외국 사법부와 교류 확대 등을 명목으로 2006년 미국·오스트리아 대사관에 판사를 보내기 시작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파견이 끊긴 상태였다.

법원행정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본격 추진하기 전인 이 시기에 법관 해외파견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특유의 정무적 구상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 초 문건에는 “새 정부 수립 이후 추가 파견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같은 해 9월께 정리된 문건에는 “청와대 인사위위원회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 특히 이 문건에는 당시 청와대의 김기춘 비서실장과 이정현 홍보수석 등이 포함된 인사위의 인적 구성이 정리돼 있다.

법관을 외국에 파견하는 데 1차 협의 대상인 외교부를 건너뛰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청와대 핵심 인사들과 ‘직거래’를 시도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법원행정처는 2013년 법관 외국파견을 재개시키는 데 성공했다. 전에 없던 주유엔(UN) 대표부와 주제네바 대표부에도 판사를 보내게 됐다.

주무부처인 외교부를 상대로도 법관 파견을 시도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지렛대로 삼아 외교부와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다.

법원행정처가 2013년 9월 작성한 ‘강제노동자 판결 관련 외교부와의 관계’라는 문건에는 ‘판사들의 해외 공관 파견’과 ‘고위 법관의 외국 방문시 의전’ 등을 대가로 기대하며 “외교부를 배려해 절차적 만족감을 주자”고 적은 대목이 나온다.

강제징용 관련 소송을 두고 ‘절차적 만족감’을 준다는 것은 외교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판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당시 대법원은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파기환송한 사건을 전범기업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의 재상고로 다시 접수한 상태였다.

법원행정처는 이 문건에서 파기환송 취지대로 사건을 심리불속행 기각해 신속히 끝내는 방안, 기록 해외 송달 등을 이유로 심리불속행 기간을 자연스럽게 넘겨 심리를 지연시키는 방안을 논의했다. 재판에 관여할 권한이 없는 법원행정처가 일선 재판에 개입해 속도조절을 해 볼 계획을 세운 셈이다.

외교부는 애초 대법원 판결대로 사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줄 경우 한일관계가 악화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대법원에 여러 차례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은 사건을 접수한 이후 상고이유서와 상고이유 보충서를 제출받는다는 이유로 2015년 6월까지 2년 가까이 심리를 미뤘다. 2016년 11월에는 외교부로부터 “양국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 담긴 의견서를 받기도 했다.

해외공관 파견을 추진하는 사이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을 다루는 대법원의 입장은 급선회했다.

애초 대법원은 2012년 5월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대한민국 헌법정신의 관점에서 원고들 청구의 정당성을 인정”했다며 “일제의 식민지배로 피해를 본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여러 소송에서 승소 가능성을 인정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재상고심 접수 4년째인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김소영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외교부 요청 등에 영향을 받는 것 아니냐”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질의에 “쟁점에 관해서 다 검토를 할 필요가 있어서 조금 늦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조만간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당시 김소영 처장의 답변과 달리 대법원의 결정은 이후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법원은 지난 27일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통상 소부에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거나 판례 변경이 필요할 때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넘어간다. 대법원은 사건을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의혹에 대해 “쟁점이 매우 어려운 점 등에 비춰보면 심리를 미루거나 하다가 비로소 시작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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