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적용 검토… 세월호 판결로 인정범위는 넓어져
초등학생 아들의 시신을 냉동보관한 아버지에게 경찰이 적용을 검토 중인 ‘부작위(不作爲)에 의한 살인죄’는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사례가 드물다.부작위는 마땅히 해야 할 위험방지 의무를 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형법은 부작위범을 결과에 의해 처벌하도록 했다. 따라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하려면 피의자에게 사망이라는 결과를 방지할 의무가 있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저버린 사실이 입증돼야 한다.
익사 위기에 처한 피해자를 구호하지 않은 경우가 대표적인 부작위 살인 사례다.
대법원은 2009년 알고 지내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유모씨에게 징역 10년을 확정했다. 유씨는 낚시터에서 피해자의 엉덩이를 팔로 건드려 물에 빠뜨린 뒤 현장을 떠났다.
유씨는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과실치사죄만 인정됐다. 2심은 “피해자가 물에 빠진 이후 낚싯대를 피해자에게 내미는 등의 방법으로 직접 구호하거나 주변에 구호요청을 하는 등의 조치를 했다면 익사를 방지할 가능성이 있었다”며 살인죄를 적용했다.
1992년에는 조카 2명과 저수지 근처를 걷다가 조카들이 물에 빠지자 구호하지 않아 숨지게 한 이모씨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이씨는 조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일부러 미끄러지기 쉬운 둑 쪽으로 조카를 유인했다.
평소 구타를 일삼던 남편이 사고로 중환자실에 실려가자 퇴원을 요구해 결국 숨지게 한 부인에게 부작위 살인이 인정된 사례도 있다.
그러나 과거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가 인정된 사건은 대부분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범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초등생 시신훼손 사건은 오히려 아버지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될 수도 있다.
피의자 말대로 아들을 욕실로 끌어당기다가 넘어져 다쳤고 한 달 뒤 숨졌다면 최소한 미필적 고의, 즉 ‘이러다가 아들이 죽을 수 있고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초등생 시신훼손 사건과 그나마 비슷한 사례는 1980년 있었다.
체육교사 출신인 주모씨는 빚을 갚으려고 여중생을 납치하려다 실패했다. 주씨는 당시 13세이던 여중생의 남동생이 사건을 눈치챌까봐 그를 감금했다. 이틀 동안 우유 몇 모금만 마신 남동생은 탈진해 숨졌다.
주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약취유인과 사체유기 등 혐의로 기소돼 1982년 사형이 확정됐다. 특가법상 약취·유인한 미성년자를 살해하면 최소 무기징역이다.
대법원은 주씨의 살인 혐의를 인정하면서 “감금 후 단지 그 상태를 유지했을 뿐인데도 사망했다면 감금치사죄에만 해당한다. 그러나 감금 상태가 계속된 어느 시점에서 살해의 범의가 생겨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않았다면 부작위 살인죄가 구성된다”고 판시했다.
살인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고 부작위 살인이라고 해서 형량이 별도로 규정돼 있지는 않다. 다만 부작위 살인이 인정되면 미필적 살인의 고의가 동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감경 요소가 된다.
계획적 범행 과정이 아닌 돌발상황으로 발생한 죽음에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한 사례가 세월호 사건이다.
대법원은 작년 11월 이준석 선장에게 살인죄를 인정했다. 대피·퇴선명령을 하지 않은 부작위가 승객들을 적극적으로 물에 빠뜨려 익사시키는 살인행위와 동등하다고 평가했다. 주관적 요소인 미필적 고의도 인정했다. 구조를 지체할 경우 승객들이 익사할 수밖에 없다고 예상하고도 먼저 도망쳤다는 것이다.
실제 살인행위와 동등하게 평가될 정도로 강한 위법성이 있어야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게 지금까지 대법원 판례였다. 그러나 세월호 판결로 대법원이 부작위 살인죄의 범위를 넓혔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법원은 당시 “반드시 결과 발생에 대한 목적이나 계획적 범행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의무를 이행했다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가 인정될 경우 부작위와 사망의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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