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서 숙식 해결하며 메르스 확산 방지 주력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의료인이라는 사명감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데, 사회에서는 오히려 격리자로 인식하는 것 같아 슬픕니다.”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첫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 20일째 되는 9일 오전 대전 서구 관저동 건양대병원에서 만난 황원민 내과 교수는 피곤한 표정이 역력했다.
어젯밤에도 병원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잤다.
황 교수는 건양대병원에서 처음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지난달 31일 이후 벌써 열흘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오전 6시부터 시작된 의료진 회의에 이어 오전 회진을 마치고 잠시 쉬던 차였다.
이 병원에서는 전날까지 2차 감염 환자(16번)와 같은 병실이나 병동을 쓴 환자 6명이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4명 중 3명이 확진 환자 접촉으로 자택에 격리됐고, 전공의와 간호사, 실습생 등 70여명도 자가격리 중이다.
황 교수는 이번 사태를 겪으며 ‘환자의 생명을 끝까지 지킨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호흡기내과 전공의 4명 중 2명이 확진 환자 접촉으로 격리되면서 다른 과에서 자원자를 모집했는데, 전공의들이 서로 자원한 것이다.
황 교수는 “33병동 근무 전공의를 뽑을 때 어려움이 클 것으로 생각했지만, 자원하겠다는 제자들이 많아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33병동은 메르스 확진 환자와 접촉해 격리된 환자들이 있는 병동을 뜻하는 말로 ‘3층에 있는 제3의 병동’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현재 건양대병원 33병동은 황 교수 등 교수진과 전공의 4명과 간호사 3명이 하루 2교대로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다.
33병동 환자들을 진료하는 일은 말 그대로 ‘메르스와의 사투’다.
황 교수는 “33병동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방호복을 입어야 하는데, 5분만 지나도 전신이 땀으로 젖는 것은 물론 숨이 탁탁 막힌다”며 “완전 방호를 하고 있어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어려워 탈수현상이 우려될 정도”라고 말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환자들을 안심시키고 간병하는 역할도 의료진의 몫이다.
여기에 메르스 확진 및 의심환자가 입퇴실 할 때마다 병실 전체를 소독해야 하고, 각종 간호 업무에 폐기물 분류 및 관리 등도 해야 한다.
33병동 임송연 간호사는 “청소는 알코올 등 소독약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눈이 따갑고 코가 시려울 지경”이라며 “땀이 계속 흘러 눈을 뜨지 못할 때도 많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의료진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다.
가족과 친지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담보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데, 의료진 가족에 대한 유언비어나 괴담 등이 유포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한 간호사의 남편은 회사에서 ‘아내가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느냐’는 질문을 수차례 받았고, 또다른 간호사는 아들의 친구 어머니로부터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말라’는 전화를 받고 혼자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임 간호사는 “사회에서 우리를 격리자로 인식하는 게 슬프다”면서도 “의료진을 향한 날카로운 반응과 불신에 찬 목소리에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환자 진료가 우선이기 때문에 참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 교수도 “모두 힘들고 누구도 들어가고 싶지 않은 33병동이지만,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기 때문에 의료인이라는 사명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며 “메르스와의 전쟁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눈앞에 두고 도망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국의 모든 병원에서 메르스 의심 및 확진환자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을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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