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에 불리한 판결 분석…통상임금 소송 증가세 한풀 꺾일 듯
16일 사실상 현대차 사측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이 통상임금 제도 개선방안을 모색중인 노·사·정 대화와 통상임금 확대 여부를 놓고 갈등을 겪는 일선 기업의 노사관계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쏠린다.서울중앙지법은 이날 현대차 노조원 23명이 상여금과 휴가비 등 6개 항목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노조 가운데 옛 현대차서비스 출신 조합원에게 지급되는 상여금 가운데 일할 상여금만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현대차는 1999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현대차서비스와 통합했는데 현대차와 현대정공의 상여금 시행세칙에는 ‘15일 미만 근무자에게 상여금 지급 제외’ 규정이 있지만 현대차서비스에는 관련 규정이 없는 점이 고려된 판단이다.
이는 ‘15일 미만 근무자에게는 상여금 지급 제외 규정이 있다’는 이유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현대차 사측이 사실상 승소한 판결이라는 게 법조계와 노동계 안팎의 분석이다.
◇ 노사정 통상임금 논의에 미칠 파장은 = 이날 판결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작년 12월 23일 도출한 노사정 합의에 따른 통상임금 관련 후속 논의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법원이 현대차 사측에 부담이 적은 분리 판결을 내린 만큼 향후 통상임금 제도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과정서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온 노동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노사정위가 올해 3월까지 우선 논의하기로 한 3대 현안 중 하나인 ‘통상임금 제도 개선 방안’ 논의가 이번 판결을 계기로 노동계의 입지가 좁아진 가운데 한층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앞서 노사정은 지난 9일 열린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상임금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제출했다.
노동계를 대표한 한국노총은 통상임금의 기준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초과노동을 억제하며, 임금 안정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통상임금 범위를 근로기준법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노총은 구체적으로 통상임금의 정의와 통상임금에서 제외되는 금품을 법률로 규정할 것과 (법률의) 입법취지에 재직자 여부 및 퇴직금 일할 여부 규정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함을 확인하는 규정을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한노총은 국회 노사정소위 지원단(공익 전문가)의 합리적인 제시안을 기본으로 1월 중 우선적으로 다룬 뒤 국회로 이관, 2월 임시국회에서 입법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실사구시적 입장으로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경영계를 대표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통상임금은 연장근로수당 등 가산임금 계산을 위한 사전(事前)적·도구적 개념이라는 점에서 ‘1개월’의 시간적 제한을 두어 통상임금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와 달리 주요 선진국에서 통상임금이 무엇이냐에 관한 분쟁이 거의 없는 것은 노사 당사자에게 통상임금 범위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맡겨놓거나, 법령에서 그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경총은 산업현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관한 급작스런 정책 추진, 입법 및 판결이 연이으면서 현장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어 거듭되는 갈등과 소모적 분쟁을 조속히 종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정부를 대표한 고용노동부는 연내에 법률에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요건을 명시하는 등 정의 규정을 명문화해 통상임금의 범위를 명확히 하고 관련 시행령에 제외금품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고용부는 입법과정에 2013년 12월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를 반영하고 노사합의로 통상임금 산입범위를 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표명했다.
◇ 통상임금 노사 갈등 주춤해지나 = 통상임금은 일선 기업 노사의 오래된 분쟁거리다. 통상임금이 넓게 인정되면 근로기준법에 따라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연장근로·야간근로·휴일근로에 대한 가산금 등도 함께 오르므로 노사가 양보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사안이다.
이번 판결로 통상임금 확대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은 일선 산업현장의 혼란이 다소나마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노사관계는 산업계의 ‘바로미터’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만 5만1천600명인 국내 최대 사업장인 현대차에 대한 통상임금 1심 소송에서 사측이 사실상 승소한 만큼 국내 다른 노조가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달라’며 통상임금 확대 소송에 잇따라 동참할 가능성이 한층 낮아졌다.
고용노동부는 작년 상반기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제기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은 25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고용부는 작년 하반기에 금융 기업 노사가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벌이면서 통상임금과 관련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는 바람에 소송건수가 더 늘었을 것으로 잠정 추산하고 있지만 이번 판결로 증가세가 한풀 꺾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통상임금 소송이 대부분 하급심 판결로 끝나지 않고 3심까지 올라가는 추세라 현장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노사를 불문하고 하급심에서 패소한 쪽이 불복하면서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많아 잠재적 갈등 요소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 관계자는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 합의체 판결 이후 대체로 대법원 기준에 따라 판결을 내렸지만 판사 개인의 성향, 가치 판단에 따라 판결이 달리 나오면서 일선 현장의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며 “노사정이 조속히 입장을 정리하고 후속 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현장의 혼란을 줄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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