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널 기다리며 밥 먹는 것도, 조금 웃는 것도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아빠가 널 기다리며 밥 먹는 것도, 조금 웃는 것도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입력 2014-04-30 00:00
수정 2014-04-30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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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남현철군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첫번째 편지>

서늘한 바람이 얼마 전까지 좋았습니다. 이젠 서늘한 바람이 불면 불안하고 그 바람이 미워집니다. 아들을 통해 지금까지 얻었던 행복이 컸지만 아들을 잃고 나서 아들을 통해 잃어버린 것들이 더 많기에 더욱더 화가 납니다. 아들의 학교 졸업식, 아들의 대학 입학식, 아들의 여자, 아들의 군대, 아들의 결혼식, 아들의 첫 아이, 이 모든 것들이 이젠 의미 없는 하나의 헛된 희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산 사람은 살겠지요. 하지만 그 사람이 살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가슴속의 아픔을 갖고 산다는 건 참 죽기보다 힘든 삶일 겁니다. 하지만 견디어 낼 것입니다. 고통을 안고 살겠습니다. 단지 바람이 있다면 우리 아이가 이 혼탁한 세상을 떠나 고통도 없고 좋은 곳으로만 갔으면 합니다. 하지만 너무 보고 싶네요. 내 심장 같은 아들이!

<두번째 편지>

여긴 직사각형 진도체육관. 제각기 아이를 잃은 사람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이곳은 웃어도 슬프고 밥을 먹어도 슬프다. 참 잔인한 시간이다. 살아 있는 희망은 어디 간데없고 시신이라도 부패하기 전에 찾으려는 현실이 서럽고 힘들다. 한 학부모가 아이 찾은 걸 부러워하고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현실이 너무 잔인하다. 물론 아이들이 겪은 고통과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고통을 겪었을까. 늦게라도 살아 있었던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빛도 없는 어둠 속에 죽어 가야만 했던 아이들…. 그래 우린 여기서 슬퍼하는 것조차도 사치이며 아이들한테 죄짓는 거니까. 내 아이는 적어도 그런 고통을 덜 겪고 갔길 바랄 뿐이다.

아들아! 아빠가 널 기다리며 밥 먹는 것도 용서해 주고 조금 웃는 것도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넌 비록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내가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내 가슴에서 영원히 함께할 거야.

<세번째 편지>

한두 명씩 나오던 아이의 시신들도 이젠 소식이 끊기고 여기에 남아 있는 우리는 모든 걸 체념한 채 공황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 이곳에 온 우린 일분일초가 아쉬웠지만 이젠 일분일초가 무뎌져만 갑니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진도가 이젠 집보다 익숙해져 가네요. 참 슬픈데 슬픈 것마저 익숙해져 가는 현실이 너무 비참합니다. 아들아! 아직도 거긴 춥고 힘들지? 아빠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해. 널 보러 가지 못해 미안해. 아빠가 널 안아줄 수 없어 미안해. 추운 배에서 널 꺼내지 못해 미안해….

<네번째 편지>

처음엔 나에게 일어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아팠고, 조금 지나니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아픔이 왔는지 신이 원망스러웠지만 이젠 시신만 찾게 해 달라고 신에게 매일 빕니다. 아이만 찾을 수 있다면 당신을 믿고 평생을 봉사하며 살겠다고 매일 신에게 빌고 있습니다. 아들아! 조금만 기다려 주렴. 하느님이 금방 아빠를 용서해 주실 거야. 내일이 되면 널 만날 수 있을 거야. 미안하다. 얘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외동아들이 차가운 바닷속에 있지만, 손 한 번 못 써본 채 2주가 흘렀다. 세월호 침몰로 실종된 안산 단원고 2학년 6반 남현철(17)군의 아버지가 아들을 생각하며 일기 형식으로 쓴 편지글이 29일 진도 실내체육관에 남아 있는 ‘동병상련’의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 짙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남씨는 ‘심장’처럼 사랑한 남군이 살았더라면 함께했을 졸업식과 입학식, 입대, 여자친구, 결혼식, 첫아이 등 인생의 주요 장면들이 이제는 헛된 희망이 돼 버렸다고 했다. 그는 “살면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가슴속의 아픔을 갖고 산다는 건 죽기보다 힘든 삶일 것”이라며 괴로워했다. “처음엔 신을 원망했지만, 이젠 시신만 찾게 해 달라고 매일 빈다”는 남씨가 아들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는 지난 26~27일 실종자 가족 몇몇 사람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내졌다. 혈육을 떠나보낸 고통과 그들의 부재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데 대한 죄책감을 함께한 실종자 가족들이 지인들에게 메시지를 옮겼고, 불과 이틀 만에 편지글은 남씨에게 되돌아왔다. 남군의 단짝 친구였던 이모(17)군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단짝 친구였다는 얘기를 듣고, 부모들도 이곳에서 친구가 됐다”면서 “두 녀석은 깊은 바닷속 컴컴한 세월호 안에서도 함께 있을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진도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2014-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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