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 갈림길 속 선후배 사랑 “정신 잃지 말라”

생사 갈림길 속 선후배 사랑 “정신 잃지 말라”

입력 2014-02-18 00:00
수정 2014-05-1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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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외대 남학생들, 새벽 3시까지 구조작업 벌여

”정신을 잃으려는 순간 선배들이 와서 이름을 물으며 손을 잡아줬어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 현장에서 구조된 부산외대 신입생 이연희(19·여)씨는 “가슴에 내려앉은 철골 때문에 숨을 쉬기 힘들어 정신을 잃으려고 할 때 선배 6명이 다가와 이름을 물으며 손을 잡은 채 ‘정신 차려’라고 말해줬다”고 떠올렸다.

지난 17일 사고 당시 이씨는 체육관 뒤편에서 머리를 감싼 채 그대로 건물 더미에 깔렸다.

이씨는 “총소리처럼 탕탕탕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더니 갑자기 앞쪽 친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며 “무슨 이벤트가 시작된 줄 알았는데 친구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는 순간 천장을 바라보니 무거운 구조물이 떨어졌다”고 전했다.

사고 직후 이씨는 자신을 찾는 선배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곧 천장 구조물에 깔려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곳곳에서 “살려주세요”라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씨는 선배들이 소속과와 이름을 물으며 “살 수 있다.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며 점점 체온이 떨어지는 자신의 손을 잡아줬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다리만 깔린 친구들과는 달리 온몸이 천장에 깔려 정신이 오락가락 했다”며 “선배들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아랍어과 신입생 문규화(19)군은 “갑자기 체육관 천장의 전구가 터지면서 마치 천장이 종이처럼 구겨지면서 내려앉는 모습을 보고 친구들과 함께 하나뿐인 뒤쪽 문으로 피했다”며 “하지만 뒤쪽 천장이 되레 왕창 무너졌고 더이상 나가지도 피하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문군은 “유일한 뒤쪽 출입문으로 나가지 못하게 돼 창문을 깨고 밖으로 나갔다”며 “밖에서는 이미 체육관에서 대피한 다른 학생들이 유리창을 깨면서 안에 있는 피해 학생들이 재빨리 대피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덧붙였다.

같은 과 이희민(19)군도 “밖에 있던 다른 학생들이 안에 있는 학생들을 위해 창문을 깨줘 체육관 안 학생들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비즈니스 일본어과 이승빈(19)군은 “체육관 뒤쪽 천장 3분의 1 가량이 무너져내렸는데 체육관 앞쪽과 중간쪽에 앉았던 학생들이 뒤쪽 출입문으로 대피하기 위해 몰리면서 많이 다친 것 같다”고 사고 당시를 설명했다.

이군은 “사고 직후 무너진 천장 사이 공간에 넘어지거나 끼어있던 학생들을 다른 학생들이 잡아주고 이끌어주면서 사고 현장을 빠져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다른 한 학생은 “사고 당시 아시아대학(학부) 소속 학생들만 체육관 안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유럽 미주대학(학부) 소속 학생들까지 함께 레크리에이션 행사에 참여했다면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것 같아 아찔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아비규환 속에서도 부산외대 학생들은 경찰, 소방대원들과 함께 구조를 돕는 등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구조대 한 관계자는 “제설되지 않은 도로에 구급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학생들이 이불 보에 부상자들을 옮겨 50∼70m 씩 들고 구급차까지 날랐다”며 “어두워서 잘 보지 못했지만 수십명의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은 숙소로 돌려보낸 뒤 구조 작업에 나선 듯하다”고 했다.

또 다른 구조대원은 “현장에 도착하니 남학생들이 무너진 앞쪽 천장을 함께 들어올리면서 부상자들을 꺼내려고 시도했다”며 “한 남학생은 울면서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철제 구조물을 옮겼다”고 말했다.

구조대에 따르면 학생들은 육안 수색이 불가능해진 오전 3시께까지 현장에 남아 구조작업을 함께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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