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삭제되고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지 않았다는 검찰 수사 결과가 15일 발표되면서 회의록 생성에서 삭제, 유출까지의 구체적 경위가 관심을 끈다.
◇ 회의록 초본·수정본, 어떻게 생성됐나 =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10월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열렸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에는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이 회담 내용의 기록업무를 담당, 배석했다.
조 전 비서관은 미리 준비한 녹음기로 회담 내용을 녹음하면서 수기 메모도 병행했다고 한다.
회담 종료 후 국정원은 정상회담 녹음파일을 인수해 회의록을 만들어 10월5일 전산망을 통해 백종천 전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 전 비서관, 김경수 전 연설기획비서관에게 보냈다.
조 전 비서관은 이튿날 국정원에서 받은 회의록 일부 내용을 수정·보완해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완성했다.
그는 10월9일 이지원 내 결재 및 보고 양식인 ‘문서관리카드’ 작성을 시작해 제목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보고’로, 보고 경로는 백 전 실장과 노 전 대통령 순으로 설정했다.
’처리의견’란에는 ‘본 자료는 1급 비밀로 지정해 특별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적어 회의록 파일을 첨부해 결재를 올렸다.
백 전 실장은 당일 문서관리카드를 열람한 뒤 그대로 중간 결재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를 10월 19일 확인한 뒤 사흘 뒤인 21일 문서관리카드의 ‘처리 의견’란에 “수고 많았습니다. 다만 내용을 한 번 더 다듬어 놓자는 뜻으로 재검토로 합니다”라고 기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이지원 내 문서처리 방법(열람·시행·재검토·보류·중단)에서 ‘열람’을 선택한 뒤 별도로 ‘회의록을 수정·보완하라’는 취지가 기재된 ‘보고서 의견’ 파일을 첨부한 후 결재를 완료했다.
조 전 비서관은 다음날인 22일 대통령 지시에 따라 회의록을 수정하기 위해 전산망을 통해 전자결재된 회의록 파일을 국정원에 전송해 주면서 수정·보완 및 변경을 의뢰했다.
국정원은 조 전 비서관의 요청에 따라 내용 일부를 수정·보완하면서 동시에 ‘저’, ‘제가’, ‘저희가’를 ‘나’, ‘내가’, ‘우리가’로 각각 고쳤다.
또 ‘위원장님’에서 ‘님’자를 삭제하고 회담의 격에 맞지 않는 말투를 고치는 등 일부 표현을 변경한 뒤 24일 전산망을 통해 다시 백 전 실장 등에게 전송하게 된다.
조 전 비서관은 국정원이 수정해서 올린 회의록을 재차 수정해 1급 비밀 형태의 회의록 문건을 작성, 그해 12월 말부터 2008년 1월 초순까지 백 전 실장을 거쳐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에서 회의록을 1급 비밀로 보관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국정원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2급 비밀로 분류해 관리하던 것보다 보안성을 강화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와 함께 ‘이지원에 있는 회의록 파일은 없애도록 하라. 회의록을 청와대에 남겨두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조 전 비서관은 2008년 1월2일 청와대를 찾아온 국정원 직원에게 ‘참고 후 파기해달라’는 메모와 함께 ‘1급 비밀’로 표시된 회의록 사본을 건넸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사본을 보고받은 뒤 역시 1급 비밀로 만들라는 취지로 직원에게 지시해 ‘국정원 보관 회의록’을 생산하게 된다.
국정원은 이 회의록을 1급 비밀로 관리해오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인 2009년 3월 2급 비밀로 재분류해 관리해왔다. 그러다 지난 6월24일 NLL 발언 논란 당시 남재준 원장이 다시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세상에 공개됐다.
◇ 회의록 삭제 경위는 = 조 전 비서관은 2008년 1월께 기록관리비서관실로부터 결재 완료된 문서들은 ‘종료처리’를 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조 전 비서관과 백 전 실장은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조 전 비서관이 별도로 보관중이던 회의록 수정본 문건을 문서 파쇄기로 파쇄했다.
또 10월9일 올린 회의록 초본의 문서관리카드는 이지원 시스템의 관리부서인 업무혁신비서관실에 삭제를 요청했다.
업무혁신비서관실은 요청에 따라 ‘삭제 매뉴얼’대로 이지원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DB)에 접근, 회의록 초본 파일이 첨부된 문서관리카드 메인테이블 등에서 해당 정보를 삭제했다. 이지원 시스템이 더이상 해당 문서관리카드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애초 이지원 시스템에는 문서관리카드 등 한 번 등록된 문서는 삭제할 수 없게 하려고 삭제 기능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2007년 2월부터 참여정부에서 기록물 이관 작업을 시작하며 이지원 시스템 개발 및 관리업체에 요청해 이지원 시스템 DB에 접근해 관련 정보를 삭제하는 방법이 기재된 ‘삭제 매뉴얼’을 제공받았다.
이지원 시스템에 등록된 문서 중 테스트문서나 중복문서, 또 등록돼서는 안 되는 민감한 문서 등을 처리하려는 조치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결국 참여정부는 이 매뉴얼에 따라 회의록 뿐 아니라 다수의 대통령기록물을 비정상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의록 봉하 이지원에 남은 까닭은 = 조 전 비서관은 ‘봉하 이지원’ 제작을 위해 2월14일 업무혁신비서관실의 협조를 얻어 이지원 시스템에 접속했다.
당시는 청와대가 기록물 이관 작업 등을 위해 대통령비서실 일반 사용자들의 이지원 접속을 차단(shut-down)시킨 상태였다.
조 전 비서관은 ‘회의록 수정 보고’라는 제목의 ‘메모 보고’를 작성해 회의록 수정본 파일을 첨부해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해 이지원 시스템에 등재했다.
이 메모보고에서 조 전 비서관은 이지원의 문서관리카드에서 회의록을 삭제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이 메모보고를 열람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업무혁신비서관실은 이 회의록 파일이 첨부된 메모보고를 봉하 이지원에만 저장되도록 한 뒤 2월18일 5t 탑차에 봉하이지원을 싣고 김해 봉하 사저로 내려갔다.
이후 업무혁신비서관실은 청와대 내 이지원 시스템에서 시스템 운용에 필요한 최소한의 데이터만 남겨둔 채 나머지 데이터를 모두 삭제했다. 참여정부 관련 기록이 저장된 하드디스크는 새것으로 바꾼 뒤 기존 하드디스크는 파쇄해 이지원 시스템을 초기화했다.
연합뉴스
◇ 회의록 초본·수정본, 어떻게 생성됐나 = 노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은 2007년 10월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열렸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에는 조명균 전 안보정책비서관이 회담 내용의 기록업무를 담당, 배석했다.
조 전 비서관은 미리 준비한 녹음기로 회담 내용을 녹음하면서 수기 메모도 병행했다고 한다.
회담 종료 후 국정원은 정상회담 녹음파일을 인수해 회의록을 만들어 10월5일 전산망을 통해 백종천 전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과 조 전 비서관, 김경수 전 연설기획비서관에게 보냈다.
조 전 비서관은 이튿날 국정원에서 받은 회의록 일부 내용을 수정·보완해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완성했다.
그는 10월9일 이지원 내 결재 및 보고 양식인 ‘문서관리카드’ 작성을 시작해 제목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보고’로, 보고 경로는 백 전 실장과 노 전 대통령 순으로 설정했다.
’처리의견’란에는 ‘본 자료는 1급 비밀로 지정해 특별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적어 회의록 파일을 첨부해 결재를 올렸다.
백 전 실장은 당일 문서관리카드를 열람한 뒤 그대로 중간 결재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를 10월 19일 확인한 뒤 사흘 뒤인 21일 문서관리카드의 ‘처리 의견’란에 “수고 많았습니다. 다만 내용을 한 번 더 다듬어 놓자는 뜻으로 재검토로 합니다”라고 기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이지원 내 문서처리 방법(열람·시행·재검토·보류·중단)에서 ‘열람’을 선택한 뒤 별도로 ‘회의록을 수정·보완하라’는 취지가 기재된 ‘보고서 의견’ 파일을 첨부한 후 결재를 완료했다.
조 전 비서관은 다음날인 22일 대통령 지시에 따라 회의록을 수정하기 위해 전산망을 통해 전자결재된 회의록 파일을 국정원에 전송해 주면서 수정·보완 및 변경을 의뢰했다.
국정원은 조 전 비서관의 요청에 따라 내용 일부를 수정·보완하면서 동시에 ‘저’, ‘제가’, ‘저희가’를 ‘나’, ‘내가’, ‘우리가’로 각각 고쳤다.
또 ‘위원장님’에서 ‘님’자를 삭제하고 회담의 격에 맞지 않는 말투를 고치는 등 일부 표현을 변경한 뒤 24일 전산망을 통해 다시 백 전 실장 등에게 전송하게 된다.
조 전 비서관은 국정원이 수정해서 올린 회의록을 재차 수정해 1급 비밀 형태의 회의록 문건을 작성, 그해 12월 말부터 2008년 1월 초순까지 백 전 실장을 거쳐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를 받은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에서 회의록을 1급 비밀로 보관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국정원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2급 비밀로 분류해 관리하던 것보다 보안성을 강화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와 함께 ‘이지원에 있는 회의록 파일은 없애도록 하라. 회의록을 청와대에 남겨두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조 전 비서관은 2008년 1월2일 청와대를 찾아온 국정원 직원에게 ‘참고 후 파기해달라’는 메모와 함께 ‘1급 비밀’로 표시된 회의록 사본을 건넸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은 사본을 보고받은 뒤 역시 1급 비밀로 만들라는 취지로 직원에게 지시해 ‘국정원 보관 회의록’을 생산하게 된다.
국정원은 이 회의록을 1급 비밀로 관리해오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인 2009년 3월 2급 비밀로 재분류해 관리해왔다. 그러다 지난 6월24일 NLL 발언 논란 당시 남재준 원장이 다시 일반문서로 재분류해 세상에 공개됐다.
◇ 회의록 삭제 경위는 = 조 전 비서관은 2008년 1월께 기록관리비서관실로부터 결재 완료된 문서들은 ‘종료처리’를 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조 전 비서관과 백 전 실장은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조 전 비서관이 별도로 보관중이던 회의록 수정본 문건을 문서 파쇄기로 파쇄했다.
또 10월9일 올린 회의록 초본의 문서관리카드는 이지원 시스템의 관리부서인 업무혁신비서관실에 삭제를 요청했다.
업무혁신비서관실은 요청에 따라 ‘삭제 매뉴얼’대로 이지원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DB)에 접근, 회의록 초본 파일이 첨부된 문서관리카드 메인테이블 등에서 해당 정보를 삭제했다. 이지원 시스템이 더이상 해당 문서관리카드를 인식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애초 이지원 시스템에는 문서관리카드 등 한 번 등록된 문서는 삭제할 수 없게 하려고 삭제 기능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2007년 2월부터 참여정부에서 기록물 이관 작업을 시작하며 이지원 시스템 개발 및 관리업체에 요청해 이지원 시스템 DB에 접근해 관련 정보를 삭제하는 방법이 기재된 ‘삭제 매뉴얼’을 제공받았다.
이지원 시스템에 등록된 문서 중 테스트문서나 중복문서, 또 등록돼서는 안 되는 민감한 문서 등을 처리하려는 조치였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결국 참여정부는 이 매뉴얼에 따라 회의록 뿐 아니라 다수의 대통령기록물을 비정상적으로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회의록 봉하 이지원에 남은 까닭은 = 조 전 비서관은 ‘봉하 이지원’ 제작을 위해 2월14일 업무혁신비서관실의 협조를 얻어 이지원 시스템에 접속했다.
당시는 청와대가 기록물 이관 작업 등을 위해 대통령비서실 일반 사용자들의 이지원 접속을 차단(shut-down)시킨 상태였다.
조 전 비서관은 ‘회의록 수정 보고’라는 제목의 ‘메모 보고’를 작성해 회의록 수정본 파일을 첨부해 대통령을 수신인으로 해 이지원 시스템에 등재했다.
이 메모보고에서 조 전 비서관은 이지원의 문서관리카드에서 회의록을 삭제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이 메모보고를 열람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업무혁신비서관실은 이 회의록 파일이 첨부된 메모보고를 봉하 이지원에만 저장되도록 한 뒤 2월18일 5t 탑차에 봉하이지원을 싣고 김해 봉하 사저로 내려갔다.
이후 업무혁신비서관실은 청와대 내 이지원 시스템에서 시스템 운용에 필요한 최소한의 데이터만 남겨둔 채 나머지 데이터를 모두 삭제했다. 참여정부 관련 기록이 저장된 하드디스크는 새것으로 바꾼 뒤 기존 하드디스크는 파쇄해 이지원 시스템을 초기화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