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에 원본 갔나…사본 삭제냐, 원본 폐기냐 논란참여정부·MB정부 핵심 인물들 조사 예상
2007년 10월에 열렸던 제2차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이 국가기록원에 없는 것으로 결론나면서 ‘대화록 증발’을 규명하기 위한 검찰 수사 의뢰나 특검 도입이 거론되고 있다.23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국가기록원을 방문해 대통령기록관에 대화록이 있는지를 검색했으나 찾지 못했으며 향후 처리 방향을 협의 중이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 여러 관계자의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국가기록원에 옮겨 보관한 기록이 이명박 정부 때 폐기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이미 기록원에 보내기 전에 참여정부가 청와대 업무관리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에서 원본을 삭제한 게 아니냐는 ‘사초(史草) 폐기’ 의혹이 불거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발언’을 둘러싼 여야의 고소·고발 사건을 수사했던 검찰의 당시 수사 내용도 새삼 관심을 모으고 있다.
향후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거나 특검을 추진할 경우 쟁점은 회의록 원본이 국가기록원에 아예 안 건네졌을 가능성, 국정원이 대통령 지시로 대화록을 관리하고 녹음파일을 토대로 대화록을 생산한 경위 등에 집중될 전망이다.
◇국가기록원에 갔나 안 갔나…국정원만 원본 있나 = 국정원이 보관 중인 2차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은 노 전 대통령의 지시로 작성한 사실은 이미 지난 2월 검찰의 ‘NLL 고소·고발’ 수사 발표에서 확인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대화록 원본은 국정원이 자체 생산했지만 이는 노 전 대통령이 ‘국정원에서 관리하라’고 지시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은 “정상회담에 갔다 와서 국정원이 (대화록을) 생산해서 드리니까 (노 전 대통령이) 이건 앞으로 국정원에서 보관·관리하라고 지시했다는 관련자들의 진술이 있었다”고 밝혔다.
파일은 회담 배석자가 녹음한 것이다. 국정원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이 녹음 파일을 풀어내 대화록 문서로 생산해 공공기록물로 관리해왔다.
당시 청와대 대통령실에서 별도의 대통령 지정기록물을 만들었는지, 더 나아가 이런 문서가 있었다면 이를 국가기록원에 넘겼는지 여부는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
◇참여정부 ‘이지원’서 삭제한 건 무엇 = 일각에서는 청와대 보관용 회담록이 삭제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해 여권의 한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2007년 당시 회담록은 국정원 원본과 청와대 사본 등으로 두 군데서 동시 보관해 오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07년 말∼2008년 초 폐기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지시에 따라 청와대 보관용은 파쇄돼 폐기됐다. 이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으로 옮겨져 보관돼 있어야 할 회담록 사본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참여정부의 조명균 전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이 지시해 이지원 시스템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삭제했다”며 “다만 회의록 자체를 폐기하려는 게 아니라 국정원에 한 부 보관된 걸 감안해 이지원에서 삭제한 것”이라고 올해 초 검찰의 참고인 조사에서 진술했다는 주장도 여권에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검찰은 “NLL 사건을 수사할 당시 국정원 회의록 외에 다른 곳에 원본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수사 대상이 아니었고, 그 부분은 판단하지도 않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청와대 보관용 문서를 파쇄했다’거나, ‘이지원에서 회의록 문서를 삭제했다’는 주장이 ‘원본’ 자체를 없앴다는 주장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도 논란거리다.
정치권 주장과 검찰 수사 결과를 종합하면 정상회담 이후 국정원은 녹음 파일을 토대로 대화록 원본을 생산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자 국정원이 대화록을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보고된 문서는 2부로 알려졌다. ‘국정원 원본’과 ‘청와대 사본’이었다. 그러나 국정원이 관리 주체가 된 뒤 별도의 ‘청와대 보관용’은 필요가 없어졌고, 이지원에서 해당 문서를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일부의 주장처럼 ‘사초 폐기’가 아닐 수도 있다”며 “국정원에 녹음 파일까지 넘겨 대화록 원본을 만들었고, 청와대에 보고한 사본은 정식 기록물이 아니므로 파쇄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에 갔다면 왜 없어졌나 = 향후 수사는 회의록 원본이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간 게 맞는지, 별도의 지정기록물은 없는지 등을 규명하게 될 전망이다.
참여정부가 국정원과 별도로 기록물을 생산했는지, 이지원에서 삭제한 게 별도 기록물인지 국정원 대화록 사본인지도 파악해야 한다.
만약 회의록이 국가기록원으로 이상 없이 넘어갔다면 왜 도중에 사라진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2차 정상회담은 2007년 10월 2∼4일 열렸으며 국정원 대화록은 2008년 1월 생산됐다. 이지원의 내용 삭제 프로그램은 2008년 1월께 설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지난 3월 노무현재단 사료팀이 노 전 대통령의 개인기록을 받기 위해 대통령기록관을 방문했을 때 이지원 사본이 저장된 사고(史庫)의 봉인이 뜯겨져 있었다”며 “무단 접속으로 보이는 로그인 기록도 두 차례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로그인 시점은 2010년과 2011년이다.
◇’대화록 생산·관리’ 핵심인물들 조사 필요 = 국정원 대화록 이외에 별도의 기록물이 생산됐고 보관 중인지, 중도 폐기됐는지, 아예 대통령 기록물로 생산하지 않은 건 아닌지 등 핵심 쟁점을 확인하기 위한 관련자 조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대화록 생산·관리에 관여한 김만복 전 국정원장, 조명균 전 청와대 비서관을 비롯해 문재인 민주당 의원, 김경수 전 청와대 비서관 등과 이명박 정부 시절의 청와대 관계자들 등이 대상이 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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