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 “폭행사실 몰라”…가해학생 생활기록부엔 ‘명랑’
지난 11일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북 경산 한 고등학생 최모(15·고1)군 사건 이후 학교가 학생관리에 소홀히 한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2011년 12월 학교폭력으로 숨진 대구 중학생 권승민(당시 13세)군 사건 이후 교육당국은 CCTV설치, 학교폭력 실태조사 등 그럴듯한 정책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학교폭력 근절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정책들은 정작 일선 학교현장에 제대로 스며들지 않았고 교사들의 무관심 속에 여전히 학생들은 학교폭력에 신음하고 있는 사실이 이번 사건으로 또 다시 드러났다.
숨진 최군은 자살 직전 작성한 유서에서 “2011년부터 중학교 동창생 5명으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해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최군이 다녔던 경산의 한 중학교 측은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은 학교폭력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적 없다. 이름이 거론된 자체가 의아하다”는 등의 입장을 밝혔다.
이들의 생활기록부엔 ‘명랑하다’, ‘활동적이다’, ‘장난기가 있지만 활동적이다’는 등 학교폭력과 거리가 먼 내용들만 적혀있다.
또 최군 생활기록부에도 ‘성격이 긍정적이며 다른 사람 말을 수용적 태도로 받아들임’, ‘책임감이 강하고 예의 바르고 친절함’ 등이 기록돼 있을뿐 그가 심각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해당 중학교 측은 “(최군이)동급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밝혔다.
숨진 최군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보호받지 못했고 상처는 계속해서 곪아가고 있었다.
최군은 올해 초 유서에 가해학생으로 적힌 학생 5명 중 2명과 함께 경북 청도군 한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같은 반에 배정됐다.
최군 누나(20)는 “동생이 고등학교 교실에서 쉬는 시간마다 유서에 적힌 가해학생 가운데 1명으로부터 뺨을 맞았다고 들었다”며 “이 때문에 학교에 가기 싫어했고 자살 결심 당일에도 등교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경찰조사 결과 최군은 유서에 적힌 학생 외 또 다른 동급생으로부터도 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최군 담임은 경찰에서 “학생들의 교실·기숙사 생활에서 특별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최군이 목숨을 끊은 후 이곳 학교를 찾았을 때도 학교의 학생관리는 여전히 엉망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지난 12일 오전 11시께 학교 주변에선 수업시간 중임에도 남녀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 여학생은 “화장실 간다고 속이고 나와 친구들과 놀고있다”며 “선생님이 찾지 않는다”고 했다.
또 옆에 있던 남학생은 “영어시간 중인데 교실에 있는 애들은 절반 밖에 안된다”며 “학교를 빠져나오면 하교때까지 안들어 간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곳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이면 학생들이 교실 뒤편 건물로 모여들어 흡연을 했지만 제재하는 이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또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교밖으로 나온 무리들이 담배를 피우러 한 건물 뒤편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도 보였다.
한 남학생은 “술마시고 다음날 학교에 무단결석하는 아이들도 많다”며 “’한번 혼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선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학교는 사건 발생 후 학생들에게 “외부접촉을 삼가라”며 입단속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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