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동력 상실 고려…새로운 갈등 대신 ‘조용한 퇴장’ 선택
한상대(53ㆍ사법연수원 13기) 검찰총장이 30일 오후 밝힐 예정이던 검찰 개혁안 발표를 접고 이날 오전 그냥 사퇴키로 했다.애초 한 총장은 이날 오후 2시 개혁안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표를 제출할 예정이었지만 급작스레 일정을 바꿨다.
검찰 안팎에 따르면 한 총장은 전날 오후까지도 개혁안을 발표한 뒤 신임을 묻기 위해 사표를 낼 생각이었으나 후배들의 견해를 수용해 마음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결단을 내린 것은 ▲본인이 개혁안을 내놓더라도 사퇴한 이상 향후 추진 동력이 없어 사실상 실효성이 낮다는 점 ▲개혁안의 내용과 수위 여하에 따라 검찰 내외부에 새로운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사퇴하는 조직의 총수로서 개혁안을 내놓을 명분이 약해진 점 등을 두루 감안한 결과로 풀이된다.
한 총장이 구상했던 검찰 개혁안의 핵심은 검찰 특수수사의 본산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와 검찰의 구조적 비리 차단을 위한 상설특검제 도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총장은 지난 27일께 초안 구상을 마쳤으나 이 과정에서 중수부 폐지안을 놓고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과 극심한 대립을 겪었다.
개혁안은 ▲검찰의 권한 분산 및 직접 수사기능 축소 ▲검찰권 행사에서 국민 참여ㆍ소통 및 견제 기능 강화 ▲사건 처리의 투명성ㆍ공정성 강화 ▲제도 개혁의 지속적 추진 등의 내용이 담겼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 총장은 중수부 폐지, 상설특검 도입,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3대 이슈 중 중수부 폐지와 상설특검 도입은 채택하는 반면 공수처는 ‘옥상옥’으로 판단해 반대 입장을 밝힐 생각이었다고 한다.
중수부를 폐지하는 대신 서울중앙지검 산하에 ‘부패범죄특별수사본부’를 신설하고 형사소송법상 관할구역 제한을 풀어 전국 단위로 부패 범죄를 수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복안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외부 인사가 다수 참여하는 검찰개혁위원회 또는 검찰시민위원회 강화 방안을 도입하고 국민이 참여하는 미국식 ‘기소배심제’는 연구ㆍ검토와 시범운영을 거쳐 점진적인 도입을 추진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또 검사ㆍ검찰직원 비리 방지를 위한 감찰 강화, 검ㆍ경 수사권 조정에 관한 의견 표명 등도 검토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총장의 구상은 핵심 참모인 최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 착수 이후 극심한 내부 혼란이 야기되면서 결국 불발됐다. 개혁안 발표를 불과 이틀 앞둔 시점에서 이런 모든 상황이 펼쳐졌다.
한 총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하다 자신의 용퇴를 촉구한 다수의 후배 검사들 사이에서 ‘사퇴하는 총장의 개혁안 발표는 순리에 맞지 않는다’는 기류가 대다수인 점을 받아들여 마음을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서부지검 평검사들은 전날 밤 회의를 열고 한 총장에게 개혁안 발표 중단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 총장은 최근 검찰간부 수뢰사건, 검사 성추문 사건 등으로 코너에 몰리자 강도높은 개혁안을 제시해 극적인 반전을 시도하려 했으나 중수부장 감찰 사태로 빚어진 ‘검란(檢亂)’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결국 ‘조용한 퇴장’을 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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