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자 “일탈행동 이면에는 술”..음주 관용문화 일침
21일 한밤중 수원에서 발생한 30대 남성의 흉기 난동사건은 만취상태에서 빚어졌다.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강모(39)씨는 이날 오전 0시55분께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한 유흥주점에 술에 취한 상태에서 들어가 여주인을 성폭행하려다가 실패하자 여주인과 다른 손님을 찌르고 도주했다.
500여m 떨어진 정자동으로 달아난 강씨는 문이 허술하게 열려 있는 단독주택으로 들어가 일가족 3명을 흉기로 찔렀다.
이 사고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 봉변을 당한 집주인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피의자 강씨는 만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강씨는 경찰에 연행돼서도 “지금은 술에 많이 취했으니 3~4시간 자고 나서 모든 걸 얘기하겠다”고 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묻지마식 범죄의 상당수는 음주폭력에서 비롯된다.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주택가에서 귀가하던 여성을 상대로 발생한 살인미수 사건에서도 어김없이 술이 등장한다.
피의자 이모(27)씨는 당시 “소주 1~2병을 마신 뒤 살해 충동을 느끼고 범행대상을 물색했다”고 진술했다.
지난 2월 11일 서울 강남구 한 대형서점에서 발생한 둔기 폭행 사건의 피의자 서모(45)씨도 술에 취한 상태였다.
지난해 11월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 살인 미수 사건의 피의자 장모(53)씨 역시 알코올성 정신분열 증상을 보였다.
같은 해 10월 강원 춘천시에서 행인을 폭행한 차모(40)씨도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경찰에 말했다.
정신의학자들은 음주에 관대한 우리 문화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국가적ㆍ사회적 안전망 구축과 대책을 주문했다.
백용매 한국중독심리학회장은 “평소에 억눌려 있던 불만, 욕구, 갈등이 음주상태에서는 쉽게 표출된다”며 “알코올 문제로만 접근하지 말고 내재한 고민과 갈등을 상담하면서 사회적 불만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 회장은 그러면서 “술에 취해 심신상실 상태였다고 이해를 바라는 음주에 대한 지나친 관용 문화와 제도도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연세대 원주 의과대학 신정호(정신건강의학) 교수는 “많은 이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일탈행동의 이면은 음주와 관련이 있다”며 “국가와 사회의 리더들부터 술 잘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기는 절제된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알코올은 뇌손상을 불러 섬세한 감각을 마비시켜 점점 과격한 자극을 요구한다”며 “증상이 심해지면 인간관계에서 감정과 신체에 상처를 주게 된다”고 음주의 심각성을 설명했다.
이한오 계요병원 알코올중독치료센터장은 “이번 사건은 한마디로 음주에 관대한 문화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센터장은 그러나 “음주가 소외계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소외계층에서 음주문제가 발생한다”며 “국가정책으로는 한계가 있고 심리적ㆍ경제적으로 고립된 계층에 대한 사회 공동체 차원의 전방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범죄심리학자들은 의정부 지하철 흉기 난동 사건과 수원 사건을 비교하면서 사회 부적응자의 ‘묻지마 범죄’의 확산을 경계했다.
피의자 강씨는 마흔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성폭행 범죄를 포함한 전과 11범의 누범자다. 직업은 일용직 노동자이지만 지난달 11일 출소해 법무부 산하 갱생보호소에서 지냈다.
표창원 경찰대 행정학과(범죄심리) 교수는 “두 사건의 출발(동기, 양상 등)은 다르지만, 시한폭탄처럼 위험성을 안고 사회적 공포감이 확산한다는 점에서 우려할 현상”이라며 “적극적으로 개입해 제도화하고 법제화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라고 밝혔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성폭행 전과가 있는 누범자를 국가가 관리할 책임을 방기한 것”이라며 “완벽하지 않더라도 전자감시제도를 확대하고 정기적인 우범자 관리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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