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과 급’ 낮춰 부대변인 발표… “신뢰인지 대결인지의 문제는 北 태도에 달려 있어” 강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의 공개 질문장은 상대방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못한 것으로 정부가 일일이 답변할 가치가 없다.”정부가 북한 조평통의 도발적 대남 비방에 대한 맞대응으로 26일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과장급) 명의의 입장문을 내놨다. 북한을 향해 정부의 공식 입장문을 발표하면서 부대변인을 내세운 것은 처음이다. ‘격과 급’을 낮춰 북한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기 위한, 계산된 조치로 풀이된다.
전날 조평통 서기국은 박근혜 대통령을 실명 비방하며 대북정책의 원칙이 신뢰인지 대결인지 밝히라는 ‘공개 질문장’을 발표했다. 조평통은 북한이 우리의 통일부 격이라고 주장하는 대남 기구로, 그중에서도 서기국은 핵심 부서로 알려져 있다. 서기국이 박 대통령 앞으로 보낸 공개 질문장을 우리는 과장급 부대변인 답변으로 일축해 버린 셈이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대변인이 나서는 것보다 부대변인이 나서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해 우리 부가 결정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동안 청와대가 통일부를 통해 발표되는 대북 입장문 대부분을 직접 챙겨 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강수에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앞으로도 굳이 대응할 필요가 없는 북한의 도발적 발언에는 대변인 대신 부대변인을 내세우겠다는 방침이다.
박 부대변인은 정부 입장문에서 “북한이 이렇게 무례한 질문을 하는 것은 북한의 혼란스러운 내부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신뢰인지 대결인지의 문제는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 체제 동요를 막기 위해 외부 문제로 시선을 돌리고자 북한이 이 같은 공개 질문장을 보낸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박 부대변인은 이어 “북한의 비인도적, 비상식적 행동으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장성택 처형 사건을 에둘러 언급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2013-12-27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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