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사학자 강덕상씨 “유족 확인 큰 의미…진실규명 새 국면”
관동(關東)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문제의 전문가인 강덕상(82)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은 학살 피해자 명단 일부가 최초로 공개된데 대해 “중요한 것은 유족이 나왔다는 것”이라며 “이는 진실 규명의 새로운 국면이 조성된 것”이라고 평가했다.강 관장은 20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학살 피해자 명단이 일부나마 확인된 것은 그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진상 규명을 요구할 유족 집단이 생긴 것을 의미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강 관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경우 현재 피해자가 살아있어 그 피해자에 대해 일본 측에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관동대지진 학살 피해자의 경우 유족이 일본에 거의 남아있지 않고, 그동안 희생자 이름도 알 수 없었기에 책임 추궁이 어려웠다”며 “이번에 희생자 290명의 이름이 확인됨으로써 그 유족들은 조상의 명예를 회복하고, 학살의 진상을 규명할 권리를 당연히 갖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관장은 또 “식민지 시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한국 정부는 관동대지진 희생자와 같은 재외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 뒤 “정부는 유족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일본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유중인 (학살 관련) 자료를 공개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은 공개하지 않고 있을 뿐 당연히 자료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강 관장은 또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 일부 피해자가 ‘일본 헌병에 의해 총살됐다’는 증언이 포함된데 대해 “헌병이 밀실에서 조선인을 처형했다는 것은 여러번 들어온 것”이라며 “그 당시 헌병이 (조선인 학살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강 관장은 일본 헌병은 당시 민족의식을 가진자, 사회주의 성향을 가진 자 등을 ‘사상범 사냥’의 형태로 살해했다고 소개했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사건은 1923년 9월1일 도쿄, 요코하마 등을 포함하는 관동지역에서 발발한 대지진(규모 7.9)을 계기로 일본 군대와 경찰, 자경단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등 유언비어를 유포하며 재일 조선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임시정부는 사망자 수를 6천명 정도로 추정했다.
정부가 지난 6월 주일한국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발견해 19일 일부 공개한 관동대지진 관련 피해자 명부에는 사망자 290명의 신상명세 외에 피살 일시, 장소, 상황 과 학살 방식까지 자세히 기록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