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돼서야 질의 속개…김기춘 “인사권자에 해임건의”
청와대 문건유출 의혹의 규명을 위해 9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는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출석요청과 거부, 돌연한 사의표명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소동을 거치면서 종일 벌집 쑤신듯 시끄러웠다.정작 비선실세 및 문건유출에 대해선 여야 모두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한 채 김 수석의 거취 문제를 놓고 오후 4시까지 ‘번외’ 공방만 계속됐다.
이날 오전 10시 회의 시작 직후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민정수석을 비롯해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중 출석 대상에서 빠진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의 출석을 요구하며 파상공세를 펼쳤다.
새정치연합 진성준 의원은 “문건 유출 사건이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관실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민정수석이 출석을 안 했는데 이래서야 국민적 의혹을 짚을 수 있느냐”고 따졌다.
야당 간사인 안규백 의원도 “민정수석은 무엇이 두려워 국회에 나서지 않느냐”며 “의혹의 정점에 계신 분들은 총체적 국정난맥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국회에 출석해 문제를 밝혀야 하고, 출석하지 않으면 전적으로 모든 책임이 청와대에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새누리당 김도읍 의원은 역대 운영위에서 민정수석이 출석한 전례는 단 두 번밖에 없었다고 맞서며 오히려 김대중 정권 시절 홍업씨 등 세아들의 구속 전력을 거론,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박지원, 문희상 의원이었는데 이 때 민정수석이 출석했느냐”며 “이런 농단 사건에도 출석 안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민정수석이 출석하지 않았다”고 방어막을 쳤다.
여야 공방이 계속되자 운영위원장인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회의시작 50분만에 정회를 선포, 간사간 합의를 요청했다.
이어 정오가 다 되도록 여야는 의사진행발언을 이어가며 민정수석 출석문제를 놓고 설전을 계속했고, 오전 11시50분부터 가까스로 질의를 시작해 4명의 의원만 질문한 후 오전 상황을 종료했다.
이 시간 별도의 밀실에서 합의를 벌인 여야 간사는 정오께 사실상 김영한 수석에 대해 본질의 이후 보충질의에 출석을 요구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고, 이 같은 설은 정치권 주변으로 곧바로 퍼져나갔다.
상황은 오후 질의 속개와 함께 급변했다.
오후 2시44분 회의가 시작되자 운영위 새누리당 간사인 김재원 의원이 “주 질문이 끝나면 민정수석이 출석해 답변키로 여야간 합의됐다”고 말했지만, 이어 말을 받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시했음에도 본인이 출석할 수 없다는 취지의 행동을 취하고 있다”며 사실상 지시 거부 입장을 전했다.
이완구 위원장이 “출석할 수 없다는 것이냐”며 거듭 물었고, 야당 간사인 안규백 의원은 “실장의 지휘하에 있는 수석이 지시를 거부하는 사태에 어떤 조치를 강력히 취하겠느냐”고 김 실장을 몰아붙였다.
김 실장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출석을 요구한 데 대해, 비서실장이 지시한 데 대해 공직자가 응하지 않는다면 강력한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입을 굳게 닫았다.
김 실장은 앞서 여야 원내대표와 2시반께 만나서도 이 같은 사실을 전하며 “나도 황당하다”고 혀를 찼다고 복수의 관계자가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여야가 합의해 출석을 요구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으면 중대사태”라며 “출석하지 않을 때 어떤 조치를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답변 부탁드린다”며 회의 속개 4분만인 2시48분 다시 정회를 선포했다.
운영위 도중 발생한 초유의 항명 사태에 여야는 당혹 속에서 사태 파악에 우왕좌왕했다.
새누리당은 당혹한 기색이 역력한 채 말을 아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공직기강의 문란함이 생방송으로 전국민에게 중계된 초유의 사태”라며 공세의 고삐를 조였다.
운영위는 가까스로 한시간 7분만인 오후 3시55분 다시 재개됐다.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올해로 국회의원 10년차를 해봤는데 오늘처럼 황당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여야가 오늘만큼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대통령께 민정수석의 즉각 파면을 건의해야 하고, 국회에서도 파면건의를 채택할 것을 요구한다”고 요청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도 “아무리 사의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업무를 수행하는 게 맞는 자세”라며 “정말 유감스럽다”고 이례적으로 청와대를 향해 유감을 표했다.
김 실장은 “엄중히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며 “사표를 받고 해임하도록 인사권자에 건의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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