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픽션』
최지애 소설집 / 걷는사람 펴냄
최지애 소설집 / 걷는사람 펴냄
그런데 문자가 위기에 처했다. 현란한 과학기술로 소통 도구가 그림, 영상으로 바뀌면서 문자가 점점 무용지물이 돼간다. 더불어 문장과 책도 독자로부터 멀어지고 있는데 그 속도가 가히 놀랄 지경,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절반을 넘었다. 그런데도 출세를 위한 자기계발서나 재테크도 아닌 문학을 붙잡고 씨름하는, 젊고 능력 있는 작가들이 아직 있다는 것이 눈물겹다. 소설가 한강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탔다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어도 책은 기대만큼 읽히지 않을 것이다.
2013년 심훈문학상을 탔던 최지애 작가의 소설집 『달콤한 픽션』은 ‘선인장 죽이기’, ‘달콤한 픽션’, ‘러브 앤 캐시’, 달용이의 외출’ 등 8개 소설이 들어있다. 주인공들은 머나먼 과거나 미래가 아닌 2023년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달콤한 픽션은 작가와 독자의 희망사항일 뿐 실재는 늘 우울하거나 씁쓸하지만 작가가 기죽지 않는 이유는 ‘불행을 먼저 떠올리는 것, 최악을 미리 그려보는 일, 무방비한 슬픔 앞에서 어떠한 희망도 품지 않는’ 지혜를 터득했기 때문으로 읽힌다. 책값 1만 6000원-온라인 서점에서 10% 할인받으면 1만 4400원이 아깝지 않도록 이야기마다 피부에 와닿고, 문장은 다부지고 촘촘하다. 모처럼 화려한 네온의 도시 서울의 불 꺼진 창을 들여다볼 좋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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