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생산·과잉 축적의 시대… 정신병적 시설 쇼핑몰을 낳다

과잉 생산·과잉 축적의 시대… 정신병적 시설 쇼핑몰을 낳다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4-12-31 02:53
수정 2024-12-31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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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순 교수 ‘도시의 정신분석’… 현대 건축과 병리의 상관관계 분석

‘자연 정복’ 꿈꾼 인간의 팽창의식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도시 형성

정크푸드같이 소비되는 공간 늘어
현대인 우울증·번아웃 시달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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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건축물인 쇼핑몰은 무빙워크, 에스컬레이터로 시공간과 흐름을 연결해 ‘과도한 흐름’을 만들어 낸다. 이런 공간에서 사는 인간들은 우울증과 번아웃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픽사베이 제공
현대 건축물인 쇼핑몰은 무빙워크, 에스컬레이터로 시공간과 흐름을 연결해 ‘과도한 흐름’을 만들어 낸다. 이런 공간에서 사는 인간들은 우울증과 번아웃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픽사베이 제공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을 중요하게 여긴다. 의식할 수 없는 억압된 감정과 욕망, 생각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분석 틀을 도시나 건축에 적용할 수 있을까.

정신의학자들은 항상 분주하고 수선스러운 도시 환경에서 사는 사람은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에 정신질환에 걸리기 쉽다고 말한다. 뇌과학자들도 도시화가 뇌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에서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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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 건축학부 장용순 교수는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인간의 팽창의식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도시를 형성했고 과잉 생산과 과잉 축적에 직면해 여러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장 교수는 이런 분석을 근거로 ‘라캉, 들뢰즈, 바디우와 함께하는 도시의 정신분석’(전 3권)을 출간했다. 장 교수는 프랑스 베르사유 건축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가 공인 건축사(DPLG) 자격을 갖고 있으며, 파리 8대학 생드니 철학과에서 프랑스 철학의 거장 알랭 바디우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자랑한다.

철학, 수학, 과학, 공학 구분 없이 연구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자나 르네상스 시대 사상가들처럼 장 교수는 ‘도시의 정신분석’에서 자크 라캉, 질 들뢰즈, 바디우, 조르주 바타유, 미셸 푸코, 이마누엘 칸트, 쿠르트 괴델, 카를 마르크스, 슬라보이 지제크 등 근현대 철학자들의 논의를 끌어와 도시와 정신분석을 씨줄 날줄로 엮어 낸다. ‘과잉 도시’, ‘환상 도시’, ‘사건 도시’로 구성된 시리즈는 철학적 사유뿐만 아니라 영화, 회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사례와 각양각색의 특징적인 도시 사진, 건축물, 설계도 이미지를 곁들여 정신 병리 현상, 도시 현상, 경제 현상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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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놉티콘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1791년 죄수들 스스로 자기 행동을 통제하게 만들 목적으로 설계한 감옥으로 대표적인 근대 건물이다. 근대 건물은 정신 병리적 측면에서 강박증과 히스테리적 성격을 드러낸다. 위키피디아 제공
패놉티콘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1791년 죄수들 스스로 자기 행동을 통제하게 만들 목적으로 설계한 감옥으로 대표적인 근대 건물이다. 근대 건물은 정신 병리적 측면에서 강박증과 히스테리적 성격을 드러낸다.
위키피디아 제공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학교, 공장, 감옥은 근대에 생긴 대표적인 건물이다. 장 교수는 이런 근대의 건물들은 무한한 세계를 유한 안에 재현하고, 시공간을 분절하고, 규율을 만드는 통제 시설이라고 말한다. 정신 병리 관점에서 보면 강박증과 히스테리 성격을 갖는 신경증적 시설들이다.

그런가 하면 대표적인 현대 시설인 편의점, 지하철, 은행, 패스트푸드점, 쇼핑몰, 터미널, 공항은 모두 실용적이지만 특별히 기억되지도 않고 고유한 정체성도 없는 장소다. 장소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비(非)장소’라고 장 교수는 정의한다. 비장소의 대표적인 예는 쇼핑몰로, 정크푸드처럼 손쉽게 소비되고 의미 없이 잊히는 공간이라는 뜻에서 ‘정크 스페이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 교수는 최근 공연장이나 학교, 관공서, 심지어 교회 같은 종교 시설조차 쇼핑몰처럼 변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근대 건물과 달리 무한한 세계를 무한 속에 배열하고 단절된 시공간을 연결하는 과도한 흐름에 놓인 현대 도시는 정신병 성격을 갖는다. 이런 공간에서 사는 현대인은 우울증과 ‘번아웃’으로 불리는 소진 증후군에 시달리게 된다고 진단한다.

장 교수는 “정신, 기술이나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흐름에는 한계가 있는데 그 흐름을 넘어서면 주체와 대상 자체가 변화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며 “현대 도시는 한계에 다다른 상태이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 사회와 도시를 생태적 흐름과 물질 대사의 관점에서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24-12-3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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