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최고 일손, 밖에선 문화재 돌보는 후손

기업들 최고 일손, 밖에선 문화재 돌보는 후손

김승훈 기자
입력 2016-05-02 17:46
수정 2016-05-0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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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지킴이’를 찾아서] (중)‘문화재 보존 전문·조직화’-기업

지난달 12일,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로구 종묘(사적 제125호). 휴관일이라 조용했다. 파란색 조끼를 입은 건장한 남성 10여명이 적막을 가르며 성큼성큼 들어섰다. 고궁의 운치를 더하는 참나무들을 ‘참나무시들음병’(일명 참나무 에이즈)으로부터 지켜내는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조경사업팀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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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조경사업팀원들이 종묘에서 참나무시듦병을 막기 위해 참나무에 끈끈이롤트랩을 감고 있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조경사업팀원들이 종묘에서 참나무시듦병을 막기 위해 참나무에 끈끈이롤트랩을 감고 있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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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호텔앤드리조트 직원들이 덕수궁 내 목조건물 마루에 쌓인 먼지를 걸레로 닦고 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제공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직원들이 덕수궁 내 목조건물 마루에 쌓인 먼지를 걸레로 닦고 있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제공
이들은 방진복으로 갈아입고, 3~4명씩 조를 짰다. 끈끈이롤트랩, 사다리, 삽 등 도구를 챙겨 각 조 담당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원들은 참나무 밑동 기준 2m 높이에서부터 끈끈이롤트랩을 아래로 감으며 내려왔다. 나무 밑바닥 주위 흙을 삽으로 파내고 땅속 아랫부분까지 촘촘히 감았다. 원춘섭 조경소장은 “종묘엔 200~300년 이상 된 참나무들이 300여 그루 있다”면서 “하루에 30~40그루씩, 열흘 정도 작업한다”고 했다.

‘참나무시들음병’은 참나무 선충류가 나무 안에서 물이 올라가는 관을 막아 나무가 말라죽는 병이다. 선충류와 공생관계인 광릉긴나무좀이 매개체다. 2000년부터 조금씩 발생, 2013년 전국으로 확산되며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조경팀원들은 언론에서 인력 부족으로 참나무가 말라죽는 걸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소식을 접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자원봉사대를 꾸렸다. 2013년 5월 종묘에서부터 예방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종묘에도 시들음병으로 말라죽은 참나무들이 산재했다. 강찬구 조경소장은 “예방법은 나무에 끈끈이롤트랩을 감아 매개체인 광릉긴나무좀이 나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조경사업팀원은 200여명이다. 매년 4, 5월이면 조를 짜 돌아가면서 종묘를 비롯해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등 궁궐의 참나무시들음병을 원천 차단한다. 팀원들은 “수백년간 궁궐을 지킨 참나무들이 시들음병으로 고사한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라며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조경기술로 그런 참사를 막는 데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어 뿌듯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20일, 주황색 재킷을 입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직원 60여명이 서울 중구 덕수궁을 찾았다. 이들은 조를 나눠 뜰에 마구잡이로 자란 풀들을 뽑거나 목조건물 마루에 쌓인 먼지를 걸레로 닦았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국내 1호 문화재지킴이 기업으로, 2005년 5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직원 600여명이 60명씩 팀을 짜 매달 돌아가면서 덕수궁, 창덕궁, 종묘 등지에서 정화 활동을 한다. 골프장 잔디 관리 기술을 활용해 매년 여름이면 경기 화성시 안녕동의 ‘융건릉’(隆健陵) 잔디도 다듬는다.

국내 기업들이 ‘문화재지킴이’ 첨병으로 나섰다. 광범위한 조직망을 바탕으로 전국 곳곳의 문화재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전문성을 요하는 작업부터 문화재 현장 청소까지 다양한 활동을 한다. 고궁 야간 공연, 전시 등도 후원한다. LG생활건강은 창경궁 보존관리 및 무형문화재 후원을, 신한은행은 숭례문 보존 및 활용 지원을 한다. 포스코는 철강 기술을 토대로 국가지정 금속문화재들을 조사, 분석하고 있다. 현재 55개사가 문화재청과 협약을 맺고 기업 문화재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기업도 문화재에 대한 애정 없이는 사회공헌 활동을 할 수 없다”며 “인력·예산 부족으로 정부가 하지 못하는 부분을 기업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해주고 있다”고 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2016-05-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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