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생생 리포트]“걸으면서 먹는 게 죄냐?”…日관광지 ‘보행 중 취식금지’ 논란

[특파원 생생 리포트]“걸으면서 먹는 게 죄냐?”…日관광지 ‘보행 중 취식금지’ 논란

김태균 기자
입력 2019-03-08 16:35
수정 2019-03-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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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중 음식을 먹지 않도록 권고하는 조례를 제정키로 한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의 고마치도리. 조례 제정에는 이곳 상점가 상인들의 불만 민원이 쇄도한 게 결정적이었다. 2019.3.9.
보행중 음식을 먹지 않도록 권고하는 조례를 제정키로 한 일본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의 고마치도리. 조례 제정에는 이곳 상점가 상인들의 불만 민원이 쇄도한 게 결정적이었다. 2019.3.9.
관광객이 너무 빠르게 늘면서 이런저런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는 일본. 이른바 ‘관광 공해’로 불리는 여러 문제들 중 많은 일본인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 중 하나가 걸으면서 음식을 먹는 행위다. 언뜻 생각하면 마음껏 즐기자고 관광지에 와서 맛있는 음식 사들고 다니며 먹는 것이 뭐가 그리 대수인가 싶기도 하지만 해당 지역 상인과 주민들은 ‘실질적으로 피해가 크다’며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쿄 인근 대표적 관광지 가마쿠라에서 보행 중 음식을 먹는 행위와 관련한 조례 제정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8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는 보행 중에는 음식을 먹지 않도록 하는 조례안을 마련, 조만간 확정할 계획이다. 음식을 먹으며 걸어다니는 관광객들에 대한 불만이 지역 상인 등으로부터 줄기차게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대표적으로 문제가 되는 곳은 ‘고마치도리’라는 상점가다. JR가마쿠라역 동쪽에서 스루가오카하치만구까지 이어지는 길이 300m 정도의 골목으로, 기념품샵이나 음식점 등이 좌우로 빼곡히 늘어서 있다. 이곳 상점회의 다카하시 노리카즈 회장은 “음식을 길바닥에 흘리거나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기도 할뿐 아니라 음식 묻은 손으로 진열된 상품을 만지는 문제도 심각하다”며 “손님들이 음식을 구입한 상점 내부나 바로 앞에서만 먹도록 해달라고 음식점주들에게 요청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광객들로 붐비는 일본 도쿄 아사쿠사의 ‘나카미세도리’. 이곳 인근의 ‘이치후쿠코지’와 ‘덴보인도리’에서는 먹으면서 보행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2019.3.9.
관광객들로 붐비는 일본 도쿄 아사쿠사의 ‘나카미세도리’. 이곳 인근의 ‘이치후쿠코지’와 ‘덴보인도리’에서는 먹으면서 보행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2019.3.9.
자기 돈으로 음식을 사서 누구나 다니는 길거리에서 먹겠다는데 벌칙을 부과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관광객들을 불쾌하게 했다가는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따라서 조례에는 단지 ‘음식을 먹으며 산책하는 것은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행위’라는 정도만이 명문화된다. 가마쿠라시 관계자는 “관광객들이 남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매너에 신경을 쓰기를 바랄뿐, 먹으면서 걷는 것 자체를 못하게 할 의도는 없다”고 아사히에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에 대해 관광객들의 반대는 물론이고 상인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다. 고마치도리에서 튀김을 판매하는 남성은 “주변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싸서 버리는 종이까지 제공하고 있다”며 “먹으면서 걷는 것을 즐기러 오는 손님도 많은데, 행정기관에서 관광객 행동에까지 간섭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절인 센소지가 있는 아사쿠사 지역에서는 이미 몇해 전부터 관련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 아사쿠사 입구 가미나리몬에서 센소지를 잇는 ‘나카미세도리’ 인근 ‘이치후쿠코지’와 ‘덴보인도리’에서는 각각 2016년과 2017년부터 먹으면서 걷는 것이 금지됐다. 교토 니시키 시장에서도 지난해 가을부터 현지 상인회에서 보행중 취식의 자제를 촉구하는 스티커를 붙였다.

아사히는 “음식을 먹으며 걷는 게 확산된 것은 대략 2010년 이후 TV 정보 프로그램에서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소개되면서부터”라면서 “최근에는 관광지에서 음식을 먹는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 등 SNS에 올리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규제 움직임과 반대로 먹으면서 걸을 수 있는 환경을 일부러 조성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 도쿄 시나가와구 도고시긴자 상가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지역 활성화 차원에서 2009년 고로케를 특화해 ‘도고시긴자 고로케’로 브랜드화했다. 동시에서 걸으며 먹는 문화를 활성화했다. 손님들에게 전용봉투도 나눠주고 있다. 토·일요일에 찾는 3만명 정도의 손님 중 2만명이 관광객이다. 상가연합회 관계자는 “쓰레기 무단투기를 하더라도 우리 상가에서 구입한 것들은 우리 상인들이 처리하면서 ‘손님들은 그저 즐겨만 달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스스로 봉투를 챙겨오는 손님들도 있는데, 이러한 자발적 움직임이 확산되는 것이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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