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불감증’ 비판 반박·국민적 불안감 해소에 주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LA) 동부 샌버나디노에서 벌어진 총기난사 사건에 따른 정치적 수세 국면에서 `정면돌파‘ 카드를 꺼내 들었다.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후 8시(미국 동부시간)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에서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번 총기난사 사건을 “테러 행위”라고 규정하고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천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는 것은 이번이 취임 후 세 번째로, 그만큼 사안의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대국민 연설은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오바마 정부의 `테러 무기력증’과 `안보 불감증‘에 대한 거센 비판과 국민적 불안감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실제로 이번 총기난사 사건은 집권 말기 오바마 정부에 정치적 타격을 준 것은 물론이고, 내년 대선을 앞두고 뜨거운 정치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에서 “어느 국가든 관계없이 테러리스트들을 끝까지 추적하고 IS를 파괴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건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테러 행위”라면서 다만, 부부 총기난사 용의자인 사예드 파룩(28)과 부인 타시핀 말리크(27)가 테러 조직과 직접 연계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언급은 연방수사국(FBI)이 심층수사를 통해 이번 사건을 자생적으로 급진화된 과격분자에 의한 테러 사건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과 궤를 같이한다. 총기난사 용의자들이 온라인 접촉을 통해 국외 테러단체들과 교신을 하고 이들의 급진 이슬람 사상에 영향을 받아 자생적 테러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제임스 코미 FBI 국장 등으로부터 이번 사건 수사상황을 보고받고 연설 내용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임박한 테러 위협은 없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미국에 실질적 위협을 끼치지 못한다‘고 단언해온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FBI가 사건 발생 사흘째가 돼서야 수사 방향을 테러로 전환하면서 `보안 구멍’ 논란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허술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번 총기난사 사건이 지난달 13일 발생한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는 물론이고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 이후 첫 테러로 기록되면서 오바마 정부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이 미국과 서방에 대한 전쟁을 촉구하는 이슬람의 잘못되고 왜곡된 해석을 좇는 급진화의 어두운 길로 빠져들었다”면서 “지난 몇 년 동안 테러가 새로운 국면으로 진화했다”고 지적했다.
자생적으로 급진화해 당국의 정보망에 전혀 포착되지 않던 범인들이 완벽한 보안 대책을 세우기가 불가능한 `소프트 타깃‘을 공격하는 새로운 테러 유형에 대한 어려움을 우회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해석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2의 이라크와 시리아 전장에 끌려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지상군 투입에 선을 그은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는 그동안 공화당과 보수 세력의 거듭된 필요성 제고에도 이라크와 시리아에 지상군 투입을 번번이 반대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의 `테러방지 대책’, 나아가 `중동정책‘의 일관성 부재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던 것도 지상군 투입 반대 방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8월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라크 자유 작전’ 종료를 선언했지만, 5년 뒤 군사고문단 3천500명을 이라크에 다시 보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꼬집었다.
미군은 IS를 격퇴하기 위해 IS 근거지 이라크와 시리아에 새로운 `특수임무원정대‘(specialized expeditionary targeting force)를 파견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백악관의 한 관리는 이날 기자들에게 특수부대의 증파 가능성을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테러방지 대책으로 비자 면제 프로그램 재고와 총기규제 법안 필요성, 테러리스트 차단을 위한 IT(정보기술) 업체의 협력 등을 촉구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비자 없이 미국으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공항검색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비행금지 명단’(No-fly List)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 상점에 가서 총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이 거듭 총기규제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번 총기난사 사건이 현재 대선 레이스에서 핵심 돌발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 초기만 해도 총기규제 입법을 촉구하는 민주당 대선 주자들의 목소리가 비등했지만, `자생적 테러‘에 초점이 맞춰지자 공화당 주자들이 공세의 고삐를 쥐기 시작했다.
심지어 공화당 대선 후보 가운데 선두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오바마 정부의 테러 대책을 무능하고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면서 강력한 테러 방지책과 함께 시리아 난민 수용 전면 중단까지 촉구하고 나섰다.
게다가 공화당 후보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기간에 추진한 이민개혁과 `오바마 케어’로 불리는 의료개혁, 이라크·시리아 정책 등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상황이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각종 개혁정책의 성공적 완수를 위해 정권 재창출이 시급한 상황에서 이번 총기난사 사건이 대선 과정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예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 장소로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를 선택한 것은 이번 사안의 성격과 향후 파장이 예사롭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USA 투데이는 분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