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빈 총리’ vs ‘이미지 연출 달인’ 평가 엇갈려
원자바오(溫家寶)가 15일 후임 리커창(李克强)에게 총리직을 넘겨주고 10년 총리 인생을 마감했다.작년 18차 당 대회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에서 물러난데 이어 총리직도 내려놓은 원자바오는 이제 국가 원로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원자바오는 재임 기간 보통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청빈한 삶을 추구한 ‘서민 총리’로 사랑을 받았다.
딱딱한 모범생 이미지가 강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달리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잃지 않으면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다.
2008년 중국을 강타한 쓰촨대지진 같은 대형 재난이 닥칠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재민들을 위로하는 그에게 중국 국민은 ‘원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검소, 소탈, 탈권위주의 등도 그를 상징하는 단어다.
헤진 밑창을 수선해가면서 10년 넘게 흰 국산 운동화를 신었고, 현지 순시 때는 검은 색 고급 세단 대신 소형 버스를 즐겨 탔다.
상투적인 장광설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중국의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원자바오는 자신의 생각을 명료한 일상적 어투로 표현했다.
아울러 원자바오는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금기시된 정치 개혁을 줄기차게 주창하면서 외부 세계로부터 주목받았다.
원자바오는 임기 후반기인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정치 개혁 화두를 던지기 시작했다.
그는 기회가 날 때마다 과도하게 쏠린 권력을 분산하고 국민의 정부 감시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서방식 민주주의를 크게 경계하는 당 지도부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했고, 원 총리는 외톨이로 전락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원 총리를 향해 ‘위선자’라는 극단적인 비판까지 쏟아낸다.
중국의 비판적 작가 위제(余杰)는 2010년 홍콩에서 출간한 ‘중국 최고의 연기자, 원자바오’라는 책에서 원 총리를 정치 투쟁을 모면하고 인민의 감성을 조작함으로써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기술 관료로 평가 절하했다.
아울러 원 총리가 정작 중국의 시급한 과제인 소득 분배 제도 개선, 국유기업 개혁, 부패 척결 등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문제를 고스란히 후대에 넘겼다는 비판 여론도 적지 않다.
정치 개혁 주장 또한 구체적 목표를 제시하지 못해 이를 자신의 인기 관리를 위한 수단으로 써먹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임기 말에는 가족의 축재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뉴욕타임스가 작년 말 원 총리 일가가 3조원대의 부정 자산을 축재했다는 폭로성 기사를 터뜨리면서 원 총리의 서민 이미지는 크게 금이 갔다.
게다가 자신의 집권 말기, 아들 원윈쑹(溫雲松·42)이 상업용 통신 위성을 관리하는 국영 중국위성통신그룹의 회장이 된 것도 구설에 올랐다.
고위층 자제와 친인척을 일컫는 태자당들이 중국 국영기업 고위직에 손쉽게 진출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많은 중국 국민은 원 총리마저 이 대열에 동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던 터여서 실망도 컸다.
원윈쑹은 이전에도 아버지의 후광을 바탕으로 사모펀드를 운영하면서 거액을 벌어들여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또한 원 총리의 부인 장페이리(張培莉)는 중국 다이아몬드 업계에의 큰 손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