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810년 강진의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훈계의 글을 지어 보냅니다. 글 속에서 “속이는 것은 모두 죄악이지만, 세상에 오직 하나 속일 것이 있으니 바로 자신의 입이다”라는 경구와 함께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해 줍니다.
“금년 여름 내가 다산(茶山)에 있을 때 하루는 상추로 쌈을 싸서 먹고 있었다. 마침 곁에서 보던 손님이 ‘쌈을 싸서 먹는 것이 상추를 절여서 먹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까’라고 묻기에, 이것은 나의 입을 속이는 방법일세”라고 대답하였다.
의식이 풍요로운 현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음식은 연명할 정도만 먹으면 되고 궁핍을 이겨 내기 위해서는 입조차 속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너무 극단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글을 통해 물질적인 향락보다는 정신적인 안락이 중요하다는 다산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고, 아울러 고난의 유배 생활을 지혜롭게 대처하였던 그의 해학(諧謔)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
조선 후기의 실학자·문신. 자는 미용(美庸), 호는 다산, 당호는 여유당, 본관은 나주. 문장과 경학에 뛰어났고 실학은 물론 서학도 받아들였다. 정조의 지극한 신임을 얻어 경세의 뜻을 폈으나 정조가 죽은 뒤 옥사에 연좌되어 오래도록 유배 생활을 하였고 만년에는 귀향하여 저술로 여생을 보냈다. 벼슬은 진주 목사를 지냈다. ‘모시강의’, ‘논어고금주’,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심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양기정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 ‘고전산책’ 코너에서는 다른 고전 명구나 산문, 한시 등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2016-03-14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