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회 계좌 등 정상 금융거래인 차명거래는 제외
탈법 목적의 차명 거래를 근절하자는 취지이나 현행법상 처벌 근거가 없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다른 차명계좌도 대상이 될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금융위원회는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후 개설된 계좌를 활용한 탈법 목적 차명 금융거래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금융실명법 개정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현행법이 1993년 금융실명제 시행 전 개설된 계좌의 금융자산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계좌 개설 시점과 관계없이 불법 목적의 차명 거래에 대해서는 과징금 징수가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불법재산의 은닉, 자금세탁 등 탈법행위 목적의 금융거래를 한 사람에게는 형사처벌과 더불어 과징금 등 경제적 징벌도 부과한다는 의미도 있다.
법 개정안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약 1천229개 전체에 대한 과징금 부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삼성 특검과 금감원이 앞서 발견한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1987년부터 2007년까지 개설된 1천229개다. 이중 27개는 실명제 전에, 나머지 1천202개는 실명제 후에 개설됐다.
금융실명제 시행 전에 개설된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27개에 담겨 있던 61억8천만원은 현행법상 과징금 부과 대상이다. 이 회장에게 부과될 과징금은 자산의 50%인 30억 상당으로 추정된다.
실명제 이후에 개설된 나머지 1천202개 계좌에 담겨 있는 잔액은 현행법상으로는 경제적 징벌 근거가 없으나 법 개정 진행 상황에 따라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금융위는 과징금 산정 시점과 부과비율, 소급적용 여부 등 세부 기준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제도 개선 취지가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나 이 회장의 나머지 계좌가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될지에 대해선 국회 논의 과정을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명제 후 개설된 계좌의 과징금 산정 기준은 차명계좌로 드러난 시점의 금융자산 가액이 유력하다.
2008년 삼성 특검에서 밝혀진 이 회장 차명계좌에 담긴 자금 4조5천억원에 50% 과징금을 적용하면 2조2천500억 원이 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이 자금 전체가 과징금 대상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든 시각이 많다.
금융위는 일반 국민의 정상적 금융거래로 볼 수 있는 선의의 차명 거래는 과징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가족 명의의 계좌나 친목회 계좌 등이 이에 해당한다.
탈법행위 목적 차명거래 판단 기준은 검찰 수사와 국세청 조사, 금감원 검사 등에서 드러난 경우로 한정했다.
금융위는 수사기관·과세당국·금융당국 간 차명 금융거래 정보의 공유를 위한 근거를 신설하는 내용도 법 개정안에 담기로 했다. 이는 실명법 위반 제재 절차를 더욱 신속히 처리하겠다는 취지다.
금융기관이 과징금을 원천징수하는 방법 이외에 과세당국이 자금의 실권리자(출연자)에게 과징금을 직접 부과할 수 있는 근거를 두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 수사·국세청 조사 등으로 사후에 밝혀진 탈법 목적의 차명 금융자산에 대해서는 지급정지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이건희 회장 이외 CJ 등 여타 재벌그룹의 실명제 이전 차명계좌도 현행법에 따라 적극적으로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금융위 김용범 부위원장은 “탈법 목적의 차명거래 규제강화를 위한 실명법 등 법률안이 최대한 신속히 국회 통과할 수 있도록 입법적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